▲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김태우

어쩌면 사랑은 천지빛깔이라 말하는 이번 연재의 부제는 '시작하는 연인'이 아니라 '끝을 준비하는 연인'이라 불러도 되겠다.

사람들은 모든 시작에 끝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 시작이 간절할수록 그렇다. 끝을 생각한다는 건 때론 비겁卑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끝을 생각하는 모두가 비겁하다는 건 아니다. 끝을 아름답고 단단하고 뿌리 깊은 시작으로 이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비겁한 사랑이란 무모無謨하지 않음을 뜻한다. 무모하지 않은 사랑은 끊임없이 손익을 계산하고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항상 뒷걸음질 치고 결과에 따라 자신이 아닌 상대를 비난한다.

항상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손님이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 손님은 사랑에 있어 쉽게 오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관대하고 불안한 미래를 약속하지 않아도 되기에 책임 또한 없다. 그래서 때론 자신이 뱉은 말과 약속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하며 또렷하기만 한 자신의 건망증을 상기시키며 즐거움만 추구한다. 잠깐의 고통이라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손님은 잠깐 스쳐 지나가면 그뿐이다. 고통이 시작될 것 같으면 잠시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문제는 해결된다. 참 쉽다. 『설국』의 시마무라가 기억하는 지루함을 덜어내는 검지의 사랑이 그렇다.

무모한 사랑은 무모함 때문에 위험하다. 순간순간이 파도波濤다. 무모하므로 오는 비 다 쫄딱 맞고 닥쳐오는 파도를 그대로 감수한다. 그래서 힘들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무모하게 달려간다. 이십 대의 사랑은 그래서 뜨겁고 무모하다.

사랑을 시작하고 끝내는 잣대가 어디 있을까. 누군가는 거칠고 뜨겁게 열일곱의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아주 매력적인 유령처럼 거짓 사랑을 속삭이며 자신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다.

과연 무엇이 사랑일까. 어떤 것은 사랑이고 어떤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일까. 헷갈리는가. 모두 다 사랑이다. 타인의 사랑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사랑이 그러하다. 그래서 사랑은 우선성優先性의 문제다.

세상에 중요한 일, 사소한 일 많다지만 막상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몸이 가고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그래서 우린 누군가를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고 누군가를 꿈을 좇는 사람이라 말한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지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고 살면서 사는 것도 문제다. 나는 여기에서 돈과 꿈을 예로 들었지만 더 중요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 복잡한 세상인가.

당신의 사랑이 이성異性의 사랑이든 동성同性의 사랑이든 아니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사랑이든 나는 그대의 사랑을 존중하고 당신의 삶을 존중한다. 단 그대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고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한다면 그대의 삶을 더 이상 존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첫 연재를 시작한 날처럼 오늘 밤도 비가 내린다. 이 비가 누군가에겐 그저 날씨라는 사실로 다가갈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눈물방울로 보일 수도 있을 거다. 같은 사실이라도 우리는 얼마만 한 무게로 얼마만 한 크기로 받아들이고 건네주는가. 대화하자. 하지만 그대가 입을 닫아버리고 귀를 막아버리면 어떡하지?

앨리스는 줄곧 두 방향으로 동시에 자란다. 이상한 나라는 언제나 분할되는 양방향을 띤다. 그녀는 또한 동일성을, 그녀의 동일성, 사물들의 동일성, 세계의 동일성을 상실하는 존재다.(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160쪽.)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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