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김태우

누군가는 지금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환승換乘(transfer)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환승이 쉬운 세상. 하지만 만남의 환승이란 냉정함을 동반한다. 과거, 혹은 현재를 과감하게 밀어버릴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련未練 때문에 이마저 쉽지 않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충분한 준비 기간이 있었음에도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처럼 헤어짐 이후 기약 없는 공백기를 거친다.

헤어지는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니고 함께 만난 시간과 장소가 많을수록 잊음은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진 연인들에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주기 때문이란 말밖에 해줄 게 없다. 사랑은 매매賣買의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이 일종의 장사(business)라면 수지결산을 위해 바로 환승하거나, 먼지만한 미련 따위도 없을 거다. 결국 숫자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숫자로 표현되기 힘들다. 그래서 시작도 힘들고 끝도 힘들다. 절대 어려울 것 같지 않으면서 쉽지 않다.

지금 당신이 누군가와 헤어지고 싶거든, 그가 미치도록 밉고 그립거든 처음 그에게 끌린 이유를 생각해보자. 돈 때문이라면, 혹은 단지 외모 때문이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이유가 명확한 사랑은 명확성이 사라지는 순간 햇빛의 온기에 노출된 눈사람처럼 녹아 버린다.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곁에 있으며, 어여쁜 여자 친구가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주기로 한 것처럼, 그의 존재 자체가 어쩐지 더 충만해졌다. 그 여자 친구란 다름 아닌, 두툼한 솜을 넣고 닳을 염려 없는 튼튼한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 그는 생기 넘쳤으며, 삶의 목표를 세운 사람처럼 성품이 강고해졌다. 표정과 행동에서는 의혹과 우유부단함, 망설이고 주저하던 모든 성향이 저절로 사라졌다. 때로는 눈에서 불꽃이 튀었으며…… 마침내 외투를 가져온 그날이 딱히……, 몇 월 며칠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일생 중에 가장 찬란한 날이었다.(고골의 ｢외투｣ 중에서)

사랑은 이렇듯 찬란한 나날이 꿈만 같은 나날이 지속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사랑이 사라진다면, 혹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력함 때문에 빼앗겨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리하여 사랑은 외부의 것을 붙잡는 것도 아니고, 과거는 더더욱 아니고 현재 내게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아닐까.

끝을 준비한다는 건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일이다. 변신은 오비디우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녀 혹은 그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이 변하지 않고 언제나 삶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 타인을 어떻게든 변화시키려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강요할 필요는 없다. 내가 변하면 될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천지빛깔. 오늘 하늘은 요즘 내가 일하고 있는 온수공단에 눈을 내리셨다. 창밖에는 흰 눈이 펄펄 송이송이 흔들리는데, 공장 안에는 쇳가루가 붉게 부서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자석만 대면 쇳가루가 눈송이처럼 피어날 것 같다. 삶은 언제나 나를 다듬고 조심조심 다가가는 일이라는 걸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그대, 아름답다. 건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지나간 건 자신을 용서하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사랑을 포기하지 말기를.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길.

김태우  ‘한국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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