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7월에 있었던 하이리그 개막식에서 학생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산시

오산엔 ‘오산하이리그’가 있다. 오산에 살거나, 오산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초·중·고·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축구동아리를 만들어 리그전을 치루는 것이다.

2008년 5월 고등학생 20개팀으로 출발, 올해로 6년째를 맞고 있다. 대회수로는 10회까지 리그전을 치렀다.

2010년엔 중학생이 중심이 된 미들리그와 대학생 주축인 유브리그가 생겼다. 곧이어 2011년 초등학생의 주니어리그가 꾸려졌다.

2008~9년도엔 여름방학 기간인 7~8월에 리그전을 치렀다. 2010~11년엔 춘·추계 연 2회로 늘어났고, 2012년부턴 춘·하·추·동 연 4회로 확대됐다.

춘계리그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5~6월에, 하계리그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7~8월에, 추계리그는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10~11월에, 동계리그는 봄방학 때인 2~3월에 열린다.

규모도 상당하다. 주니어리그에 한 번이라도 출전한 팀은 모두 9개팀이다. 미들리그 20개팀, 하이리그 25개팀, 수능시험이 끝난 고3생들의 스페셜리그 5개팀, 유브리그 6개팀이다. 한 팀에 대략 15~20명 정도씩만 따져도 1천여명이 훌쩍 넘어간다.

오산종합운동장, 보조축구장, 죽미체육공원을 오가며 경기를 치루고 있다.

3일 오후 9시 본지 사무실에서 하이리그 산파 역할을 한 하이리그 조직위원장 김규정(50) 목사를 만났다.

-하이리그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아이들이 해달라고 했다. 큰아들이 고2였다.

2008년에는 잠만 자고 일어나면 PC방이 생겼다. 게임중독이 지금의 학교폭력만큼 이슈가 됐다. 제 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들을 찾으러 PC방으로 쫓아다녔다.

친구들끼리 떼를 지어 PC방에 몰려가서 며칠씩 유숙을 했다. 밤에 들어오기만 해도 쫓아다니지 않았을 텐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학교도 안 갔다.

그러다 아들하고 타협을 했다.

“왜 PC방이 나빠요? 왜 다니지 말라고만 해요? 돈 때문이라면 알바를 해서라도 다닐거예요.”
“담배연기 자욱한데서 나쁜 공기 마시며, 잠도 못자면서 게임하고, 졸려서 잠자느라 학교도 안가고, 니네들이 할 일이냐.”
“우리는 가지 말라는 데만 있고, 우리가 가야할 곳은 없잖아요?”
“그럼, 뭘 해줬으면 좋겠냐?”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PC방에 가지말라고만 했지 ‘너희들 여기 가서 놀아라’라고 해본 적이 없더라.

아들 친구들 20명이 찾아와서 ‘축구대회를 열어 달라’고 했다. ‘10개 팀이 넘으면 대회를 열어주마’ 했는데, 20개 팀이 넘어서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이리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개팀 출전 신청을 받고 주장들로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회 명칭도, 정관도, 규정도, 심판규칙도 아이들과 같이 회의를 거듭하면서 만들었다.

가능하면 구실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모으려고 했다. 그래야 PC방에 안 가니까. 축구에 빠지면서 PC방 안가고 운동장 나오는 시간 늘어나면서 하이리그가 시작됐다.

그때 아이들 얼굴, 이름 다 생각이 나네. 걔들이 지금 군대를 제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하이리그를 통해 아이들이 많이 변했을 것 같다. 감동적인 일도 많았을 텐데.

첫 하이리그 대회를 마치고 20명 주장들이 수기를 썼다. 아이들이 만든 회지에도 실었다.

‘오산 하이리그를 생각하며.

우리끼리 축구시합을 할 때면 언제나 뒤끝이 좋지 않았다. 학교끼리 알력이 있었고, 팀 간에 경쟁심이 있었다. 내기 축구시합이라도 하게 되면 승부가 정정당당하게 가려지지 않고 나중에는 싸움을 하게 된다. 진 팀이 꼬리를 잡아 시합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서로가 이런 불미스런 일을 주고 받았다. 그러던 중 오산하이리그를 맞게 되었다.

오산하이리그는 달랐다.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지키며 모두가 승복하는 경기를 했다. 하이리그를 통해 우리는 화합하고 하나가 되었다. 하이리그를 집행하시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전국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하면 오산은 너무도 작고 친밀한 공동체이다. 그런데 오산 안에서 서로 싸운다는 것은 너무도 바보 같은 부끄러운 짓이다.” 우리는 하이리그를 뛰면서 학교끼리 알력도 없어졌고 팀 간에 불화도 사라져 버렸다.

2008년. 8. 30. 신종운(운암 스파르타. 성호고 2학년)’

‘올해의 여름은 오산하이리그가 있어 행복했다.

이전에 나의 생각은 공부를 못한 학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오산하이리그 때문이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자신이 없고 기가 죽지만 하이리그를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기가 살아나며 행복해 진다.

학교에서 공부 때문에 눌렸던 나의 생각과 마음이 운동장에 나가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로 친구들에게 나의 축구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어 너무 좋고 행복하다.

오산하이리그는 나에게 생동감을 주고 활력소가 분명하다.

2008. 8. 30. 구윤모(맨유, 성호고 2학년)’

‘오산하이리그를 마치고.

오산하이리그를 마치고 작년의 여름방학과 올해의 여름방학을 비교해 보았다.

작년의 여름방학을 회상하면 떠오르는 세 단어가 늦잠, PC방, 담배연기이다. 올해의 여름방학은 친구, 새벽, 축구가 생각난다. 하이리그 때문이다.

작년의 여름방학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 죽치고 앉아 늦은 밤까지 게임하며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올 여름방학은 오산하이리그가 있어 새벽에 일어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였다. 해마다 방학이면 엄마의 잔소리와 아빠의 호통소리로도 나를 깨우지 못했는데 하이리그는 나의 새벽을 깨워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한다니 즐거웠고, 친구들과 약속을 했으니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나는 이런 하이리그가 방학 때만 아니라 날마다 했으면 좋겠다.

2008. 8. 30. 유성철(운암 스파르타. 성호고 2학년)’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몇 가지 소개를 한다면.

중·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데, 운동장에 나와서 피라고 한다. 흡연실도 만들어줬다. 부모님들은 왜 그냥 놔두냐고 뭐라고들 한다. 저는 아이들한테 운동장에 나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두운 데서 담배 핀다. 뒷골목에 가서 애들 돈이나 뜯는다. 내 시야 안에 들어오면 사고는 안 친다. 얘들아, 오늘도 운동장에 나와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하이리그 사회도 보고, 내빈소개도 하고, 애국가도 부르고, 선서도 한다. 행사 때 높은 분들 다 왔는데, 그런 자리에서 애들이 얼마나 추억에 남고 자랑스럽겠냐.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한다.

제가 당황할 때는, 사회를 본다고 해서 리허설까지 다 해놓고, 개회식이 10시인데 안 나타나는 거다. 그냥 늦잠 잤다고 하고 그만이다. 미안한 것도 없다. 내가 늦잠 잤는데 어쩌라는 거냐는 식이다. 심판을 보기로 해놓고 안 나타난다. 오전부터 심판을 봐야 하는데, 자기 경기 시간에 맞춰 오후 늦게나 나온다. 그러면 정말 미치는 거다.

처음엔 야단 쳤다. 근데 이제는 야단을 안 친다. 대타를 마련하지 못한 내 탓을 한다. 제 2안, 3안을 준비하지 못한 내 탓이다. 오히려 칭찬을 해준다. ‘푹 자고 나왔으니 이제 멀쩡한 정신으로 더 잘하겠네요’라고. 그다음부턴 심판을 많이 확보해 놓고 있다.

-하이리그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인가?

아이들 부상 때문에 가장 어렵다.

물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준비운동도 시키고, 경각심도 주고, 부상 방지를 위해 서로 배려하라고 한다. 안전요원도 둔다. 하지만 축구가 몸싸움이 불가피한 운동이기 때문에 대회마다 경기수가 많다보니 한 건 이상씩 부상이 생긴다.

보험을 들어 보험 처리를 하지만, 부모들이 개입을 한다. 부산에선 부상으로 장애가 생겨 구속까지 당한 사례도 있다.

한 아이가 부상을 당해 서울병원에 2주 동안 입원을 했는데, 학교에 못나가 공부를 못했으니 보상하라고 하더라. 고소를 당했다.

부상 당하기 전에는 ‘목사님, 수고하십니다’ 하는데, 일단 부상을 당하면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회의가 왔다. 아이들이 와서 ‘목사님, 대회 좀 열어주세요’ 하면 다시 열고, 반복해 왔다.

2011년도에 고소를 당하면서, 고비였다. 제 아내가 그러더라. ‘오산하이리그, 아무나 할 수 없으니까, 당신이 해!’ 그걸 제가 신의 음성으로 들었다. 아내의 음성을 빌려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 후론 제가 힘들어 못하겠다고 안한다.

-하이리그엔 추구하는 3대 정신이 있다고 들었다.

하이리그 3대 정신은 자립정신(스스로 하자. 못하는 것만 부모의 도움을 받자), 협동정신(서로 도와주면서 하자), 친교정신(학교끼리, 학년간 서로 친하게 교재하고 학교폭력 추방하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이리그가 학교폭력 추방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주장들이 리더십도 있고 축구도 잘하고 활발한 애들이다. 학교에선 이른바 일진이다. 그런 아이들이 하이리그를 통해 하나가 됐다. 자연스럽게 학교폭력이 없어진다. 서로 친하고 아니까.

주장들이 조직위나 하이리그 할 때 소개를 한다. 예를 들어, 주장인 홍길동이라는 친구가 한 중학교 일진이다. 하이리그 하면서 소개도 하고 서로 친해진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홍길동이랑 친구다’라고 하면 누가 건드리겠냐? 경찰서장이 일진을 관리하라고 하는데, 제가 일진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된다. 무시하고 인정을 안해주려고 하니까 알력도 생기고 싸움도 생기는 거다. ‘너 일진이냐. 그럼 일진은 자존심도 있어야 하고 남자다워야 한다. 약한 아이들 괴롭히면 멋있는 남자가 아니다. 너하고 강한 애하고 한판 붙으면 내가 심판 봐줄게. 근데 약한 애들 괴롭히면 하이리그 출전 못해.’ 심판학교에도 입학시켜 심판으로 세워주고 잘하면 상도 준다. 그러면 아이들이 절대 착한 일진이 된다. 아이들이 개화된다.

-운영을 하는 데서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처음엔 사비를 털었다. 뜻있는 분들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기도 했지만.

운동장 사용료, 보험료, 시상비는 꼭 있어야 한다. 그것만 해도 몇 백만원 들어가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물도 못 먹였다. 아이들이 갈증난다는 걸 생각 못했다. 그래서 수돗물을 받아주니 냄새 난다고 안 먹더라.

페트병을 모아 경기 전날 필봉산 약수터에서 밤새 물을 받아서 아이들에게 줬다. 물값이 없어서.

오전, 오후 다 경기를 하는 팀도 있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배고플 나이인데 점심은 먹여야 되지 않냐. 애들은 굶는데, 많은 것은 해줄 수 없고, ‘너희들 점심을 뭘 해줬으면 좋겠냐’, 그러니 ‘주먹밥 2천원짜리, 컵라면’ 아이들이 결정을 했다.

작년부터 곽상욱 시장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면서 교육과학기술부 토요학교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연간 2천만원을 지원받았고, 올해도 받는다.

지금은 물을 차로 실어다 놓고, 점심도 준다. 많이 먹을 때는 600명, 적게 먹어도 200명이다. 장관이다. 수돗물 떠주던 때를 생각하니, 제가 보고 울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작년에 조직위 임원, 심판 40명이 경주로 1박2일 MT를 갔다왔다. 워크숍에서 하이리그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아이들이 ‘오산하이리그는 됐다. 오산을 넘어서 다른 지역과 교류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경기하이리그를 해보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마침 대한축구협회 최재성 유소년연맹 회장이 전국 18개 시·군을 선정해 초·중·고 5개 부문으로 나눠 전국하이리그를 한단다. 오산시가 선정이 됐다. 오는 11월 전국하이리그 대회에서 원조격인 오산이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조직위원은 아니더라도 어른들로 구성된 후원회를 조직하고 싶다. 뜻있는 분들이 후원회원이 돼, 돈만 내는 후원회원이 아니라, 반드시 학생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에 와서 학생들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칭찬도 해주는, 그런 후원회원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장명구 기자  jmg@mh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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