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함을 풀어주는 노동마저 쾌락으로 치부했다면
삶은 얼마나 괴롭고 재미없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순간에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삶에 용해돼 있는 속성은 안락과 정주를 추구한다. 아름답고 값진 것에 궁금증을 갖게 하고, 어떤 목표를 향해 이바지하게 되는 것도 모두 비슷한 이유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을 상실해버리거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만을 갈망한다면, 안락과 정주는 얻을 수 있을지라도 행복은 가질 수 없다. 이 얼마나 완전무결한 진실인가.

▲ 목욕탕의 때 미는 풍경. ⓒ이동권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 목욕탕에서 일하는 때밀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년 동안 때를 밀면서도 아들에게만은 자신의 직업을 숨기고 있다는 한 때밀이의 애환처럼, 타인의 삶에 손가락질하고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못난 이웃들을 위해서이다. 또 사지가 꽁꽁 묶인 범죄자처럼 차디찬 세상의 이목에 갇혀 사는 때밀이의 삶을 통해 소중한 노동의 의미를 발견해보고자 한다.

노동도 세고, 경기도 잘 탄다

나는 때밀이를 만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때를 밀어봤다. 아무리 부탁해도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엉덩이를 마루 끝에 걸치고 앉아 있는 마음으로 때밀이 테이블에 누웠다. 하지만 때밀이가 시키는 대로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불가사의하게도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스트레스가 쫙 풀렸다. 모르는 사람에게 벌거벗은 몸을 맡긴다는 것이 부끄러워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잠시, 결국 스르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시간만은 만사가 귀찮게 느껴졌고 위대한 사랑의 예감에 이끌린 듯 몸이 이완됐다. 돈버는 일조차 성가실 정도였다. 그 편안함은 일종의 ‘쾌락’과도 비슷했다.

반대로 그 순간 때밀이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반바지 고무줄 밴드에 걸쳐 놓은 수건도 어깨와 등줄기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축축해졌다. 허리띠처럼 빙 둘러 찔러 넣은 그 수건의 용도가 무엇인지 그때에야 알 수 있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여의도에 있는 한 사우나를 찾았다. 후텁지근하고 습한 수증기가 피어오르면서 벽면거울을 잔뜩 흐려놓았고, 뜨거운 탕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애타는 세상 걱정일랑 모두 잊은 채 피로에 찌든 몸을 녹였다.

칸막이가 있는 한쪽 구석에는 물에 젖어 반짝반짝 윤이 흐르는 때밀이용 테이블이 서너 개 있었고, 때밀이는 4분의 4박자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샤워와 간단한 목욕을 마친 뒤 욕탕 출입문 옆에 ‘때를 미실 분은 벨을 누르세요’라고 적혀있는 벨을 눌렀다. 어디에선지 “갑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때밀이가 나타나 흰 수건을 배에 대고 “어서 오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인사했다. 잠시 후 팬티를 갈아입고 나타난 때밀이는 나에게 똑바로 눕게 했다. 그리고 몸에 미지근한 물을 한 바가지 끼얹은 뒤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안면 마사지에 들어갔다.

때밀이는 손가락 끝으로 힘을 조절하면서 지압을 했다. 두 손을 합장하듯 모아 머리와 이마도 두드렸다. 시냇물처럼 경쾌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시원하다기보다는 통증이 느껴졌다. 긴장한 나머지 입을 굳게 닫고 있어서다. 그래서 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붕어처럼 해보았다. 그것마저도 불편해 아예 힘을 쭉 빼버렸다.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치며 달각달각 소리를 냈다. 그제야 뼛속까지 시원함이 전해졌다.

때밀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때밀이는 서비스업이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나빠도 손님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때밀이가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손님이 원하면 안마도 더 해주며, 손님이 쉬고 싶어 하면 조용히 때 미는 일에만 열중한다.

때밀이 이정철 씨도 내가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지 이름이며, 집이며, 자질구레한 일상사들을 물었다. 경직된 몸을 풀어주기 위해서였으리라.

이 씨는 13년 전, 아이들 교육도 시킬 겸 큰 맘 먹고 전라북도 익산에서 서울로 이사와 음식점을 경영했다. 지금이야 별다른 호칭없이 ‘어이’로 통하지만, 그때는 ‘사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다. 하지만 자리가 좋지 않아선지, 음식 맛이 별로였는지 장사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IMF가 밀어닥치자 그마저 있던 손님도 반 토막이 났다. 이 씨는 하는 수 없이 월세가 계속 밀려 망하다시피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작은 가게를 얻어서 분식점을 차렸다.

“월세가 줄어드니까 순수입으로만 치자면 그게 더 괜찮았어요. 근데 코딱지만한 분식점에서 일 년 정도 아내와 같이 일하다 보니까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자리를 찾았는데, 별다른 기술도 없고 해서 있는 돈에다 빚을 좀 얻어 때밀이를 시작했어요.”

이 씨는 처음 때밀이 학원을 찾아갈 때 많이 망설였다. 남의 때를 밀어야 한다는 게 수치스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그는 “이만한 돈벌이가 없어 용기를 냈다.”면서 “처음 손님 때를 밀었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때밀이는 개인 사업자

이 씨가 학원에서 때 미는 기술을 배울 때는 IMF 여파 때문인지 수강생들이 많았다. 좋은 직장에 다녔던 고학력자들, 중소기업 사장, 아예 부부가 함께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때밀이도 목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노동. 목욕탕 주인이 때밀이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를 놓기 때문이다.

“때밀이를 하려면 보증금을 걸고 들어와야 해요. 가게 얻는 거하고 똑같거든요. 큰 찜질방이나 손님이 많은 목욕탕은 보증금도 많아요. 보통 1억에서 2억 하지요. 여기는 좀 오래돼 싼 편이죠. 그래서 손님들한테 친절할 수밖에 없어요. 때미는 실력도 중요하고요. 손님들이 오지 않으면 쪽박 찰 수 있거든요.”

이 씨의 한 달 수입은 250여 만 원. 그다지 많지 않은 돈이다. 경기가 좋지 않거나 자리가 좋지 않으면 이보다 더 적게 버는 때밀이도 수두룩하다. 마포에 있는 한 사우나에서 일하는 때밀이 경력 20년의 김현승 씨는 한 달에 150여 만 원을 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 학비를 대는 것도 벅차다. 그래서 김 씨의 아내도 일을 하고 있다.

김 씨는 “20년 전 처음 때밀이를 시작할 때는 직장생활보다 나았는데, 지금은 형편없다.”면서 “새로 생긴 큰 목욕탕 때문에 동네 목욕탕에 손님이 줄기도 했고, 또 마이카(My Car)시대이다 보니 손님들이 외곽에 있는 좋은 목욕탕에 가서 그렇다.”고 말했다.

김 씨가 한 번 때를 밀고 받는 돈은 10,000원. 마사지에 안마까지 받으면 20,000원.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고 치면 하루에 대여섯 명의 손님을 상대하는 셈이다. 강남에 있는 한 대형 찜질방에는 때밀이만 5명이 있다. 보증금을 내고 들어온 사업주가 보조 때밀이를 거느리고 있는 이곳의 한 달 수입은 3000만 원에 이른다.

▲ 때를 미는 데도 다 요령이 있다. ⓒ이동권

때밀이를 괄시하는 우리 사회

안마는 다시 발바닥으로 이어졌다. 먼저 표면이 까칠까칠한 돌로 발뒤꿈치에 붙어 있는 군살을 밀어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양쪽 발바닥을 꽉 쥐었다 편 뒤 발끝에서 발목으로 쓸어 올리며 발 중앙의 움푹 팬 부분을 지그시 눌렀다. 손아귀 힘이 센 편이어서 몇 번 주물렀는데도 피로가 금방 싹 가셨다.

계속해서 때밀이는 배 부분을 밀기 시작했다. 때수건을 잡는 폼도 예사롭지 않았다. 때밀이의 손이 목 끝에서부터 배와 다리가 연결되는 선까지 일직선으로 움직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처럼 손맛이 매서웠다. 그런데도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손놀림 하나하나가 모두 다 정해진 것처럼 일률적이고 부드러웠다.

내 손이 때밀이의 허벅지에 올라가 있다. 이제 오른쪽 손등과 팔을 밀 차례이다. 벌써부터 때밀이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이 씨에게 “때 미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요?”라고 물었다.

그는 “때는 힘으로 미는 게 아니라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손바닥을 쫙 펴서 종이를 말듯 문지르면 때가 잘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때밀이는 땀을 흘리는 육체노동’이라면서 “운동량은 트레이닝을 하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전날 술을 좀 마신 날에는 참으로 힘들다.”면서 ‘때밀이는 체력관리가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정직하게 돈을 벌고, 가장 겸손한 자세로 손님들의 기름때를 벗겨주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삶의 시름까지 풀어주는 직업인데도 때밀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서다.

내가 만나본 때밀이들은 모두들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열심히 사는 생활인으로서 본인들도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밀이들을 괄시하고 우습게 본다. 어떤 경우에는 “야, 때 좀 밀자.” “야, 이리로 와.”라고 홀대를 하거나 반말 투로 조소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김 씨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에게 아직까지도 자신의 직업이 때밀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김 씨는 ‘서로 말은 못하지만 아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숨을 고르면서 “풍이 든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더 열심히 밀어주고 싶지만, 거만하거나 불량한 사람은 때를 밀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때밀이 비용은 정가입니다

때밀이가 나를 옆으로 눕혔다. 거울 속으로 때밀이의 웃는 얼굴이 들어왔다. 힘든 가운데에도 정성스럽게 말을 건네는 때밀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가득하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웠지만, 손님을 기다리면서 TV를 보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씨는 안마를 하면서 때를 민다. 이것이 그만의 노하우다. 때를 밀면서 계속 근육을 풀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런 정성에는 손님들이 다음에 또 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녹아 있다. 하지만 이 씨는 가끔 손님들하고 싸운다. 신경질적인 손님을 만나는 경우다. 이런 손님들이 가장 힘든 이유는 돈을 주지 않으려고 해서다.

이 씨는 ‘보통은 웃어넘기지만, 때밀이가 시원치 않다며 돈을 주지 않는 경우에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했다. 김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문신한 사람들이나 깡패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거만하게 굴 때면 그냥 안쓰럽고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고 말지만,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는 손님에게는 화가 난다.”는 것. 실제 그는 10여 년 전 때밀이 비용이 2,000원일 때 500원만 내고 가는 손님을 팬티만 걸치고 밖에까지 쫓아가 받아낸 적도 있었다. 그것도 한겨울에 말이다.

“정직한 노동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손님들도 스트레스 받겠지만, 때밀이에게 풀지 않았으면 하고요. 하는 일이 달라서 그렇지 사는 건 다 비슷하지 않은가요?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겠습니까.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좋은 일에 머리를 쓰면 되고, 기술이 있는 사람은 좋은 일에 기술을 쓰면 되고. 어차피 옷을 벗으면 똑같고, 언젠가는 땅에 묻히는 게 인간의 운명인데.”

이름과 얼굴은 밝히지 마세요

이제 등을 밀 차례이다. 때밀이의 손짓에 따라 나는 등이 보이도록 엎드렸다. 배를 밀 때와 마찬가지로 때밀이의 때수건은 능숙하고 가지런하게 움직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온다. 손이 닿지 않은 등판이 기가 막히게 시원해서다. 그리고 때밀이는 허벅지와 종아리를 차례로 밀었다. 때수건이 잘 닿지 않는 사이사이는 팔과 다리를 들어 올려 세심하게 밀었다.

족히 20~30분은 지난 것 같다. 땀으로 범벅이 된 때밀이가 마지막 작업에 들어갔다. 때밀이는 내 몸에 물을 끼얹고 비누거품을 풍성하게 내 닦았다. 그리고 내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이 씨는 나에게 “혹시 직업이 기자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 씨에게는 먼저 신분을 밝히고 사진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실명이나 얼굴이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이들 때문이란다.

따뜻한 온탕에 들어가 앉았다. 뽀송뽀송한 살갗을 만져보니 자연스럽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때밀이, 참으로 편안하고 쾌적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편안함과 쾌적함을 누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나는 이날 그러한 행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역시 인생이란 체험을 통해서 명백하고 일정한 결론을 얻어 가는가 보다.

이동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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