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은 듯 한 청빈,
서리발 같은 지존은 언제나 옳은 선비의 거울이 되려니와
어두운 곳에서 모해하고 권세에 아첨하며
의 앞에 머뭇거리는 세속의 못된 선비에게 그는 뼈아픈 채찍이 될 것이다

그동안 친일 청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의 근, 현대사는 거짓과 진실이 뒤 바뀐 채 이어 왔고 그 가운데 문화인물의 왜곡사례는 심각했다. 이제 역사의 흐름은 진실의 편에 서서 되돌릴 수 없게 느리지만 흘러가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인물의 조명과 관련 사업들은 그 지역의 정신세계와 가치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실용의 잣대만으로 따질 수 없는 정신세계이기에 그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화성시의 노작홍사용선생을 기리는 여러 일들을 보며 이 같은 흐름을 느낄 수 있어 매우 반가운 일이다. 화성시는 지난 2002년 12월 동탄면에 소재한 노작홍사용 묘역을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하고 같은 해 노작문학상을 제정해 노작홍사용을 기리는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동탄신도시에 노작홍사용기념관을 건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본명은 홍사용, 호는 노작, 백우등이 있으며 돌부처, 대리석,열두박사등의 별명이 있다.
노작홍사용(1900∼1947 시인, 희곡작가. 수필가, 소설가. 연극인)은 1900년 인근 용인시 기흥읍 농서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화성시 동탄면 남양홍씨문중 선영에 안장되어있다.

대표적 유작으로는 나라를 빼앗긴 한을 노래한 서정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비롯, `봄은 가더이다`등 주옥같은 시·소설·희곡·평론등을 다수 남겼다. 뿐만 아니라 신문학 초기 <백조> 동인지를 발간하였으며, 조선최초의 근대연극단체 극단 <토월회>에 참여 신극운동에 헌신하였고, 일제 암흑기에 혹심한 가난 속에서도 회유와 강압을 물리치고 창씨개명은 물론 붓까지 꺾어버린 선비정신의 절개와 지조를 지켰다.

시인 조지훈은 노작 홍사용을 “그의 씻은 듯 한 청빈, 서리발 같은 지존은 언제나 옳은 선비의 거울이 되려니와 어두운 곳에서 모해하고 권세에 아첨하며 의 앞에 머뭇거리는 세속의 못된 선비에게 그는 뼈아픈 채찍이 될 것이다.” 며 그를 회고 했다.
노작 홍사용은 1920년대 암울한 시대의 현실을 겪으며 깊은 절망에 빠져 잠시 방랑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치열한 삶과 작품 속에는 민족의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은 치열했다.

그에 삶과 작품 속에는 민족의 자각노력과 민족심, 향토심이 짖게 베어있다.
1947년 서울 공덕동 큰아들(최규선)집에서 “조선 사람들은 조선을 알아야한다”하고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우리는 노작 홍사용이 식민지 현실에서 끝끝내 지조를 지킨 예술가요, 지사였음을 기억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2002년 홍사용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 문화계 인사들이 주도해 설립한 ‘노작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홍신선)가 주관하고 화성시가 후원하는 노작문학상이 올해 7회째를 맞이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적 작품을 남긴 노작(露雀) 홍사용(洪思容: 1900∼1947) 시인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됐으며 매년 수상자를 발표하며 지난 12월7일 화성시 소재 라비돌리조트에서 일곱 번째 수상자를 냈다. 수장자는 시인문재인씨로 선정작은 시(詩)<물의 결가부좌> 외 4편이다. 수상자에게는 1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서요’하는 그 소리였지마는,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날에 동내(洞內)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 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 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스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 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 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버리었소이다.

울음의 뜻을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 중 략 >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寒食) 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 그 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었소이다.

누-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실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將軍)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 구름은 얼마나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世上) 어느 곳에든지 설음이 있는 땅은

모다 왕의 나라로소이다.


표수훈 기자
전경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