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극 된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다. 한산성은 2014년 6월에 석굴암, 창덕궁, 수원화성에 이어 한국에서 11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를 기념해 얼마전 '한산성 거리극(유네스코 등재 1주년 기념식)'이 열렸으며, 곧 있으면 일년에 한번 있는 남한산성 문화제가 열린다. 아직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가을의 찬바람이 부는 이때, 남한산성의 가치를 찾기 위해 등산길에 올랐다.

남한산성은 수도권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등산객이 등산하기 좋게 잘 꾸며져 있어 현재는 시민들의 쉼터이자 등산로로 자리매김했지만, 역사적으로는 한국의 깊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남한산성은 본래 호국유적으로 국가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새였다. 고려 때 대몽항쟁 혈투에서 처인성을 승리로 이끈 것은 물론이요 구한말에는 천주교의 성지로, 일제 강점기 때는 항일운동의 거점으로 이용됐다. 그 중에서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서울을 얻기 위해 서울을 버리고 택한 장소이자,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했던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현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남한산성 지도와 코스 (출처:남한산성 도립공원 홈페이지)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을 병풍처럼 두르며 하남·성남·광주를 아우르는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성곽이다. 산성을 휘돌아 외성까지 다 둘러보려면 8시간은 잡아야할 정도인 만큼 탐방코스도 가지각색이다. 공식적인 루트는 5가지로 추릴 수 있으며, 이외에도 곳곳에 있는 숨겨진 아름다운 길이 10곳 넘게 존재한다.

<지화문(남문)>

▲지화문

 

성남에서 올라가는 방법은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려 유원지를 지나 산을 오르는 방법이다. 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르다보면 숨이 가빠올 때 쯤 남문이 보인다. 남문의 명칭은 ‘지화문’으로 남한산성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다. 중앙에 홍예문을 두고 좌우로 자연석을 막돌 쌓기로 반듯하게 쌓되 수평 줄을 맞추어쌓았으며, 그 높이가 높아 성벽의 안전을 위해 위로 올라가면서 석축 면에 비탈을 두고 점점 안으로 들여가며 쌓았다.

병자호란당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당시 왕 앞에서 왕을 인도하는 자가 5~6명에 지나지 않았고 문무백관 중에 따라온 이도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조가 광화문을 지나 한강을 넘어 이곳에 도달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을까. 과연 발이 어는 듯 한 한겨울을 이곳에서 보내야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산성 교차로>

▲교차로 인근 식당가

 

과거 상처를 보듬기라도 하듯이 남문을 나오면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만들어내는 왁자지껄함에 기분이 들뜬다. 본래 남한산성은 분지 형태라 ‘천혜의 요새’라고 불렸다. 산중턱에 위치한 이 평지는 백성들이 터를 닦고 살기에 적합했다. 그 중에서도 산성교차로는 저자거리로서 주산성주민들이 장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다.
현재는 이곳에 버스정류장과 교차로주자창도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물론 여기까지 구불구불한 산길을 드라이브 오는 것도 좋겠지만 가벼운 등산으로 몸을 데워 밥맛을 좋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남한산성 도립공원 근처에는 등산객을 위한 맛 집이 많고, 전통가옥 형식의 식당들도 많다.

▲연무관

 

좀 더 로터리를 자세히 보고 싶다면, 군사들이 훈련하던 연무관과 일제강점기 시절 천주교성지와 사찰을 가보는 것도 좋다. 남한산성 곳곳에는 사찰이 많다. 본래 남한산성에는 신라 시대 사찰인 망월사와 옥정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1624년 대대적 축성을 시작하면서 국가에서 승려들이 거처할 사찰을 먼저 지었는데, 이때 총 7개의 사찰이 지어졌다. 남한산성 내에 있는 사찰은 8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모두 남한산성 축성에 참여한 승려들이 세운 사찰이다.

<남한행궁>

▲행궁 안 외행전

남한산성 행궁은 전란을 대비해 만들었던 만큼 크기도 크지 않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임금의 안위를 보살피기위해 주위를 담으로 둘러놓고, 부속시설도 담 밖으로 설치하는 등 폐쇄 적인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남한행궁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어디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왕을 보호하겠다는 날선 긴장감이 행궁 안을 메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시절이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현재는 행궁 안에 작은 도서관이 들어서 있으며 복식체험관을 만들어 관광체험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든든하게 배도 채우고 행궁도 둘러보았으니, 울창한 소나무림에서 산림욕을 하며 다시 산길을 오를 시간이다. 남한산성은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소나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적게는 70년에서 많게는 100년가량 된 붉은 빛의 적송이 많다. 이렇게 소나무가 잘 보존되었던 이유에는 일제강점기 때 주민들이 나서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어장대>

▲수어장대

이렇게 산길을 오르다보면 하나둘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어장대에 다 와간다는 표식이다. 이곳은 서울보다 온도가 4~5도 낮은 탓인지, 그 기운마저 썰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수어장대는 전쟁을 지휘하고 적의 관측하기 위해 세워진 누각이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은 건물이다. 2층 누각에 팔작지붕으로 쭉 뻗은 그 모양새가 웅장하지만, 전쟁을 염려하는 듯 실용적이며 절제된 미를 갖추고 있다.
 

▲대기오염때문에 뿌옇게 보이는 서울하늘

 

수어장대에 오르면 서울하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강아래 1%의 공간도 낭비할 수 없는 것처럼 건물이 세워져있고, 그나마 남은 위례의 여백에 신도시 아파트가 빼곡히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린 왜 이렇게 갑갑하게 살고 있을까? 좀 더 여유를 갖고 살면 안되는 걸까? 남한산성에 올라와 서울을 내려다보면 저 도시정글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한국사회의 조급함이 한눈에 보인다.

우리는 흔히 현대인의 삶을 ‘하루하루가 전쟁같다’고 표현하곤 한다. 실제 전쟁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현대인은 매일을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삶에 지치고 힘들 때, 남한산성 등산 계획을 세워보는 게 어떨까? 위기의 순간이 찾아와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에도 의연히 전쟁을 버티며 한강을 지키고 있는 남한산성의 호연지기를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남한산성에서 뭘 먹지?

남한산성하면 백숙이나 닭죽과 같은 보양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남한산성을 다녔던 사람들이 추천하는 곳은 단연 ‘손두부’집이다. 뽀얗고 부드러운 두부를 따듯할 때 먹으면 마치 치즈와 같은 식감에 속도 따듯해진다. 그 외에도 파전과 비빔밥 같은 요깃거리를 등산 후 적당히 땀을 흘린 후에 먹으면 막걸리가 절로 들어간다.

 *광주 남한산성문화제 2015

 

 

매년 10월 중순이 되면 남한산성 축제가 열린다. 산성문화제는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이 백제의 도읍지이자 국난 극복의 장소라는 '역사성'에 초점을 둔 축제다. 각종 풍물놀이와 공연, 전시 이 잇따라 열리고,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산성소주 제작시연과 시음, 민속장터도 있어 흥겨움을 더한다.
올해는 20회와 유네스코문화유산 1주년을 맞아 특별한 행사들이 준비 중이다. 기간은 10월 16일 부터 18일까지 남한산성 도립공원 일원에서 진행된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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