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인 '모란시장'은 4일과 9일 즉 5일에 한 번씩 도심한복판 300m에 달하는 거리를 형형색색의 파라솔로 물들인다. 규격화된 장소 외에도 시장 주변까지 가판대를 펼쳐놓고 장터를 형성하니 오고가는 사람들의 양 손에 든 비닐봉지 부딪히는 소리가 신호등 앞을 가득 메운다. 한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마주하는 이런 번잡함은 또 색달라서 주변상권과 모란시장은 어느 기점부터 다른 세상을 살기로 결심한 건 아닌지 평행우주론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튼 모란시장은 '장이 섰네 안섰네'를 거론 할 수 있는 수도권 유일무이의 재래시장이라는 말이다.

모란시장은 황무지였던 '모란'지역 일대를 1960년대 개간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는 4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며 여타 오일장과 비교하자면 매우 젊다.

모란, 입 안에서 굴려볼 수록 예쁜 이름이다. 모란은 지리적특성이나 행정구역상으로 나눈 명칭이 아니다. 이 일대를 개간한 김창숙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창숙의 고향은 평양이었으며 그는 홀어머니를 두고 남하하여 군에 입대, 1958년 7월 32세의 나이로 육군대령으로 예편한 사람이다.

대령이 된 후, 그는 지금의 모란에서 황무지 개간사업을 시작했다. 주로 가난한 제대군인들을 모아서 버려진 땅을 일구기 시작했는데 김창숙이 개간사업을 시작하자 그의 뜻에 동조하는 제대군인들이 자꾸 늘어 50여명이나 됐다. 그러던 중 5․16 군사혁명으로 군부가 집권하자 광주군수로 특채되어 1961년에 3개월 동안 재임했지만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현재의 모란에 있었던 재향군인 개척단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여 신개척지에 동네에 형성되자 지명이 필요하여 이에 김창숙은 재향군인 개척대원을 모아놓고 숙의를 하였으나 알맞은 명칭이 떠오르지 않자, 그는 이북 평양에 두고 온 어머님을 그리는 마음과 모란봉을 연상하여 ‘모란’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고향의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삶의 터전의 대한 갈망으로서 일궈낸 모란시장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도심 속 오일장이라는 특수성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모란의 중심역할을 하며 인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란시장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고, 광역버스 정류장(당시엔 터미널)과 환승역이 생기며 교통의 요새가 됐다. 그러므로 인근에 포진한 대형마트들도 모란시장이 일군 인프라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한파에도 식지 않는 모란시장의 열기

영하 14도의 추위에도 장은 섰다. 두꺼운 점퍼로 중무장한 상인들과 거북목을 하고 시장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겨울철 재래시장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상인들은 뜨거운 국물을 난로위에 올려놓고 식사를 하기도 하고 살을 에일 듯한 추위에 닭들도 목을 웅크리고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 그대로이다. 모란시장에선 재래시장에서 찾는 대부분의 것을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부서별로 잘 나누어져 있어 장보기가 편리하다. 장터 입구에 화려한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화훼부를 시작으로 잡곡, 약초, 의류, 신발, 잡화, 생선, 야채, 음식, 고추, 애견, 가금 순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추부’다. 도시 5일장인 모란장에서는 서울과 인천․경기도 남부 지역의 고추방앗간을 상대로 고추도매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일부 고추도매상들은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고추를 공급하고 있다. 수도권의 고추시세가 모란장의 시세에 따라 결정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추부와 함께 모란장의 대표적 부서라고 할 수 있는 애견부에서는 애완견과 특수견, 잡견이 주로 거래되고 있다. 귀여운 애완견 너머로 식용개가 판매되는 모양새가 어쩌면 충격적일 수 있다. 애정과 보양에 대한 욕망이 한군데에서 뒤엉기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한국의 적나라한 현실의 한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호기심과 향수를 느끼며 장을 보다보면 금세 양손이 무거워지기 일쑤다. 그 중에서도 추천하는 것은 ‘모란시장표 기름’이다. 가축시장의 뒤편으로 들어서면 고소한 기름내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참기름 들기름부터 살구씨나 홍화씨까지 기름이 되는 대부분의 것들을 직접 짜서 판매하고 있다. 이런 기름들은 기계를 돌려 볶고 짜낸 후 직접 병에 담아내는 반기계식 형태로 만들어진다. 병에 든 기름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찬장으로 데려오는 순간, 백선생이 요리에 두르는 들기름 한 방울은 신성한 의식이나 마법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점수 대표 “성남사랑상품권 통해 골목상권 활성화 기대한다”

35년간 모란시장에서 고추장사를 해왔던 유점수 상인회장의 모란시장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낙후된 환경이나 고령화로 인해 발전 속도가 늦춰진 재래시장의 현실에 대해 직시하면서도 젊은 층의 소비욕구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모란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이긴 하나 점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증을 받지 못해 국가차원의 지원은 받지 못하고 오로지 상인들이 내는 자리 값으로 상인회를 꾸려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매달 남는 돈으로는 노인잔치나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자원봉사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 10월부터는 성남시 중원지역 7곳 전통시장 상인 2,050명이 연합회를 구성해 상권 번영과 상생에 힘을 모으기도 했다. 상인대학을 통해 각 시장 상인들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골목상권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등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회는 앞으로 전통시장 공동 마케팅을 강화해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에서 골목상권을 지키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성남시는 현재 3대 무상 복지를 시행하며 그 비용을 ‘성남사랑상품권’으로 지급하고 있다. 성남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이 상품권은 현재까지 성남시가 90억에 달한 금액을 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품권의 활성화를 피부로 느끼냐”는 질문에 그는 반색을 표하며 당연하다는 답이다. 모란시장 같은 경우는 상품권 수요가 굉장히 많아졌고,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달 24일에는 장이 제대로 서지 않았음에도 무려 2천만원이 넘는 상품권이 들어왔다고 한다. 성남사랑상품권은 성남시에서만 쓰는 화폐대체품이기 때문에 골목활성화의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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