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을 호되게 꾸짖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을 불신하는 떼법문화가 만연하고 불타협,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들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도 가중되어간다”고도 했다.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면서 도전과 진취, 긍정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해야 하며, “모두가 스스로 가진 것을 조금씩 내려놓고, 어려운 시기에 콩 한쪽도 서로 나누며 이겨내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치 국민의 정신개조를 촉구하는 경축사인 듯하다.

말이야 백번 옳은 말이지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이 주옥같은 의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경축사를 보면 그동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던 국민이 현재 절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 불통의 리더십과 반서민, 반역사적인 국정기조 때문임을 대통령 자신만이 모르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은 수십 년 간에 걸친 일제의 지배와 6.25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딛고 세계에 유례없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기념비적인 나라이다. 그런데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자긍심이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 들어와 헬조선, 흙수저 논란이 일 정도로 급격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일생을 좌우할 정도의 신분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으며,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친박 핵심과 청와대 수석들의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예외가 되면서 국가의 기강은 무너져 내렸다.

박근혜 집권 하에서 역사왜곡과 친일 논란으로 대한민국호는 정체성을 잃고 표류 중이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굳이 뉴라이트 계열이 주장하는 ‘건국 68주년’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1919년 기미독립선언과 이어진 상해임시정부 수립의 정통성에 입각한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욕보였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무시한 채 100억원 가량에 일제의 만행을 눈감아준 채 굴욕적인 한일합의를 통해 다시는 일제의 만행을 재론하지 않겠다는 족쇄를 채웠다. 이에 아베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군사적 재무장을 강화하는 한편 호시탐탐 독도를 노리고 있다. 각료들은 당연한 듯 전범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신사참배에 나서고, 일본 정부는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기 위해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려고 한다. 광복절 날 부활하는 일본군국주나 극우 민족주의에 대한 경고는 없이 단 한 줄의 허망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외쳐대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겨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미국에 대한 구애로 사드를 일방 배치하면서까지 미사일방어체제에 편입하려고 하지만 미국의 대선 주자들은 오히려 한미 FTA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개정할 것이라느니, 주한미군 주둔방위비를 더 내놓아야 한다느니 하며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

남북교류와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정착을 통해 북방의 영역을 개척하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꾀하려는 한민족의 발전전략은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이 이어지며 사실상 폐기되었다. 상대방 정권에서 이룬 업적은 무조건 허물고 깎아 내리려는 편협한 정치적 단견이 불러온 민족적 참사이다.

중국·러시아와 미국·일본의 열강들이 각축을 펼치는 동북아 정세에서 남북이 중심을 잡고 교류·협력하고 강대국을 견제하며 민족의 활로를 모색하긴 커녕 북에서는 젊은 지도자가 3대 세습과 취약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고자 핵과 미사일 개발에 치중하고, 남에서는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로 한반도를 신냉전의 화약고로 몰아가니 남북 정권의 독재자 후예자들의 불장난에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로만 치달아간다.

남북관계와 외교 및 국제관계에 있어서만 무능한 것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삶과 직결된 경제이다. 전년 동기대비 수출 19개월째 감소와 경제성장률 2%대의 저성장 장기불황 고착화, 전체기업의 10%에 달하는 한계기업, 각각 1300조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국가부채, 두 자리 수의 청년실업, 2017년도 최저임금 시급 6470원·월급 135만 2230원의 저임금,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달하는 비정규직,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49.6%로 OECD 국가 중 1위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불황형 흑자로 외환보유고가 늘었다는 이유 등으로 미국의 신용기관이 국가신용등급을 올렸다고 해서 헬조선의 대한민국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자살률 12년째 OECD 국가 중 1위, 출산률 세계 최저 수준, 상위 10% 부자의 소득이 하위 10%의 10.1배일 정도로 빈부격차 심화 등은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잘 보여준다.

소비가 안돼 내수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중소기업, 제조업이 붕괴되고 대량실업의 악순환이 반복돼도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은 여전히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늘리는 노동법 개악을 앵무새처럼 되뇌인다. 일감몰아주기와 골목시장 진출로 탐욕의 배를 채우고, 낙수효과도 전혀 없는 재벌만 옹호하고 노동자는 위험시한다. 이로써 친재벌 반서민 경제무능 정권이 민생파탄의 근원이라 한다면 과하다고 할 것인가.

대통령은 뜬구름 잡기식 창조경제를 외치기 전에 경제생태계를 파괴하며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파괴하는 재벌개혁에 나설 일이며, 창의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얘기하기 전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머리를 획일적으로 통제하려는 자신의 무지와 독선부터 뜯어고칠 일이다. 유승민과 비박계를 공천학살하고, KBS 세월호 보도통제를 자행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드배치 일방결정을 하는 식의 비민주성으로는 창의적인 경제와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한 한국경제 잠재력 상실의 위기에도 자신이 공약으로 내건 누리과정 예산 지원도 파기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70년대 박정희 유신시대의 냉전적 사고에 갇혀 이념으로만 모든 잣대를 들이대고 종북몰이와 어버이연합 등 극우단체 지원에만 신경쓰니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면서 아프리카까지 외교란 명목으로 돌아다니니 세금만 아깝다는 국민이 적지 않을 듯싶다.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에 눈감은 채 수조원의 지원으로 혈세를 낭비하고, 공공부문에는 낙하산인사의 폐해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4대부문 구조개혁을 주창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생존권과 사회민주화 투쟁에 나선 민주노총 위원장을 감옥에 보내려면 한 번에 수천만원을 쓰며 자신의 집으로 20대의 젊은 여성들을 불러들여 황제성매매 의혹을 받고 있는 재벌의 총수와 관여한 관계자도 조사해서 사실이면 함께 감옥에 보낼 일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와 현직 부장판사가 기업인이 준 돈을 받고 구속되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고, 최경환 의원은 롯데로부터 50억원을 수수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현기환 청와대 전 정무수석과 윤상현 의원 등은 선거 출마 준비 중이던 예비후보자에게 지역구를 옮기라고 협박까지 했다. 심지어 이정현 집권당 대표는 KBS 세월호 보도통제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런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가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갖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들을 실소하게 만든다.

천억원대의 수상한 처가 부동산 거래 의혹, 아들 병역특혜 의혹, 농지법 위반 의혹 등 비리백화점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감싸기는 스스로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렸다. 법과 정의를 외치는 검찰간부 출신 민정수석의 타락과 법치주의를 강조해왔던 대통령 자신의 이중적 태도가 지금 나라의 도덕과 기강을 뿌리부터 흔들며 위기로 몰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민중은 개·돼지”라거나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막말을 해대는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같은 사람이 나온다.

스마트와 인공지능, 민주화, 수평적 시대에, 70년대 박정희식 냉전사고와 맹목적 충성과 줄서기를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로는 나라를 이끌 수 없다. 친박 외엔 정치적 파트너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국가적 현안에 대한 이견을 갖고 있는 야당과 국민을 찾아가거나 설득하지 않고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 발언 등의 손쉬운 방법으로 국민을 가르치려는 국정운영 방식으로는 사회적 분열만 키울 뿐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는 자신의 정권 하에서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탄압, 백남기 농민에 대한 공권력 학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소홀한 대처, 성주 군민들에 대한 고립화, 누리과정 공약 무시로 인한 아이와 주부 위협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횡포가 만연한 것에 대해 진솔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을 탓하고 야당을 탓하기 전에 먼저 대통령 자신과 주변인물의 허물부터 살피고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단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국민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정권이 교체되기 전까지 국민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마음의 상처는 달랠 길이 없어 보인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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