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벗어나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예술입니다. 그것을 저항이라고 말하는 건 보는 사람의 평가일 뿐이죠.”

지난 9월 5일 독일 평화의 소녀상 준비 위원회 발족식에서 경기 민예총 이성호 이사장을 처음 만났다. 시원시원한 발언을 하던 보라색 머리의 그의 삶을 들어보기 위해 풍물굿패 ‘삶터’의 연습실 지하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이곳도 이제 20여년 되었네요. 곧 큰 굿이 있어 준비하느라 연습실에 고깔이 널려 있어요. 죄송합니다.”

그를 따라 내려간 연습실에는 단원들이 종이 한 장 한 장 직접 접어서 만든 고깔이 한쪽 벽에 매달려 있었다. 평소 풍물패들의 풍성하고 하얀 고깔이 이렇게 손수 만들어진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민예총은 그동안 각 지부별로 활동하던 경기도의 민예총 단체들이 함께 만든 단체예요. 이전에는 민족예술총연합의 줄임말로 ‘민예총’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민예총’입니다. ‘민족’이란 말로 표현하면 의미가 좁아지고 제한되는 것 같아 ‘民’자로 대신하기로 한 것이죠.”

옛 역사에서 보라색은 지배층만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저항으로 보라색 머리를 했다는 그는 경기문화재단 6층에 자리한 민예총 사무실보다 이곳 지하 연습실에서 주로 활동한다. 수원시의 풍물패 삶터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고 현재도 단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그곳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민예총 이사장으로서 월급을 받거나 하는 건 없지만 보람된 일들이 많아요. 경기도와 현재 협의 중인 일 중에 내년쯤에 DMZ를 기점으로 남쪽에서 올라가고 북에서 내려오고 서로 만나서 한 판 굿을 벌이는 행사를 해보려고 해요.”

“함께 어울려 살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고 그것을 하고 있기에 늘 힘들지 않고 행복했다”는 그를 보니 타고난 예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1학년 때 상여 소리를 1시간동안이나 해서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는 이후 굵직한 행사의 상여 소리를 도맡아 했다. 전태일 어머니 이순선 여사와 김근태 의원 돌아가셨을 때나 지난 팽목항에서의 세월호 행사 때도 그가 상여를 했다.

“저희들이 하는 예술을 ‘저항이다 순수 예술이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든 예술은 시대정신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민중들의 삶을 담아내는 예술이 국가 권력으로부터는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예술인들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본연의 일이기에 그는 늘 그 일을 해왔다고 했다.

“특정인들만 기술을 가지고 향유층에 수혜를 베푸는 방식의 예술은 예술을 고립시키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며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예술이 배어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동네마다 공연장과 생활 체육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삶 속에 예술이 스며들 때, 향유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더불어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재의 문화 정책은 보여주기식 사업 정책이 대부분이에요. 세익스피어 한 명을 키우기 위한 예술인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예술인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 그를 만나며 ‘예술’과 ‘예술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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