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세월호 사고 당시 선원이 학생들에게 지시한 내용이다. 이때 지시에 따라 가만히 있었던 학생들은 물에 잠긴 배안에서 무참히 죽어갔다. 이번 경주 5.8 강진 때도 똑같은 지시가 내려졌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 이쯤이면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이 생각날 상황이다. 학생들은 부리나케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 어린 학생들은 더 이상 어른들의 세계를, 그들의 무책임한 충고를 믿지 않는 것이다.

9월 12일 오후 8시경 경남 부산에서는 20층 건물이 체감으로 엄청나게 흔들릴 정도의 강진이 발생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강진이 발생한 이후에는 여진이 생기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진에 대한 별다른 대책 없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9월 19일 부산에서 여진 4.5가 발생했고, 21일 오전 11시 53분경 경주에서도 규모 3.5의 여진이 발생했다. 강진 이후 20여 차례의 여진이 곳곳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에게 현장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할 국민안전처는 홈페이지 접속자 조차 수용하지 못하고 먹통이 되었다. 이에 국민들은 국민안전처가 아닌 국민고통처라고 하면서 혀를 차고 있고, 이것이 정부에 대한 국민인식의 현주소다.

지진이 나자 부산 시민들은 불안에 떨며 시민운동장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자고, 학생들은 교실에서 밥을 못 먹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배식을 했다. 정부는 뒤늦게 피해를 확인하면서 앞으로도 여진이 발생할 수 있으니 기상특보에 신경써달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 말하며 뒷북을 쳤다. 12일 강진 발생한 이후 열흘 가량 지났다.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열흘이 지난 지금도 피해 상황이 어떤지만 확인할 뿐 제대로 된 대책 마련 조치는 찾아볼 수 가 없다.

또한 심각한 것은 학교 등의 공공건물 시설이 10%대의 내진율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건물 중 1988년 이전에 지은 건물은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국내 주요 건물이 내진 설계를 시작한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며, 정부 출연 연구기관 건물 조차도 25% 이상이 지어진 지 2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다. 위험물을 다루는 연구기관조차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터지면 끝장인 국내 원전은 발전소 아래 지점에서 발생하는 지진 규모 6.5~7.0까지만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희권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10만년을 기준으로, 한반도에 규모 7이상의 강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 관계자들은 이번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계속 활성단층(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 아닌 것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활성단층 지도를 만들어 지진에 대한 대비를 종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5년 전 이 인식에 의해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서 혈세 20억원을 투입해 연구한 국내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 지도 제작은 그 시기에 중단됐다. 2012년의 연구에서 이번 경주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산단층대가 활성 단층대라는 결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양산단층에 밀집된 원전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만 가중되고, 환경단체가 원전 가동에 반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란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도대체 얼마나 더 위험의 소용돌이에 국민을 몰아가려 하는 것인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각종의 사건 사고에 무방비 상태와 늦장 대응하면서 국민들에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정부의 무책임과 인재(人災)로 인한 죽음은 더 이상 안된다.

송민주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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