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사이판 드라이브 시켜 주심 안되요?” 라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다음 날 가주시겠다고 한다. 지금껏 가보지 않았던 곳들만 골라서 보여주셨는데 풍경도 좋지만 오고 가면서 들었던 그분의 이야기가 눈물과 웃음을 주었다. 만남이 곧 여행이다. 한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이다.

박준수 사장은 사이판에서 2007, 2008년 한인회장을 하신 분이다. 이곳 교민들의 삶을 위해 많은 부분 헌신한다. 한인회장 할 당시 교민들의 생활을 고민하면서 한글학교를 만들었고, 한인회관을 지었다. 80년대 봉제 공장하던 건물과 부지를 자신이 매입하여 한인회관으로 기부까지 하였다. 83년 사이판에 와서 식당 일부터 시작했고 이곳에서 만난 한국 여자와 결혼하여 딸 셋을 낳았다. 큰딸과 둘째딸은 미국에서 의학과 생물학을 공부한다. 작은 구멍가게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큰 마켓 5개를 운영하며 직원들이 8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제는 마켓을 정리하고 ‘골드타운’ 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숙박업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 화단 가꾸시고, 숙소 청소나 공사도 직접 맡아서 한다. 개똥 치우는 일, 개밥 만들어서 밥 주는 일, 보수나 수리까지 온갖 허드렛일들을 손수 하신다.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 항상 구슬땀 흘리면서 인부들처럼 일한다. 어려서 전라도 시골에서 자라 농사일에 익숙하고, 20대 초반 사우디아리비아 가서 일한 경험이 처음 해외에 나갔던 것이라 한다. 80년대 초반 한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미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사셨다. 모든 것을 독학으로 시작하여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서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홀단신 사이판 사회와 경제에서 우뚝 서신 분이다.

달무리

사이판 한 달 살기 여행을 계획했고, 어찌어찌 숙소를 구하여 지내고 있다. 우연히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게스트하우스였지만 박준수 사장과의 만남으로 인해 사이판의 진면목을 더욱 알게 되었다. 오며 가며 마당에서 얼굴을 마주치면 항상 친절히 인사를 먼저 건넨다.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느냐고 물어봐 준다. 자신이 직접 만든 차라면서 모링가 차를 끓여 주시기도 하고, 한국서 들여온 봄동으로 김치를 담가서 작은 병에 나눠 주신 인정 많은 분이다. 화단을 애지중지 가꾸시면서 온갖 꽃나무와 화초, 알로에, 쑥갓, 호박, 고구마, 모링가, 망고나무, 노니, 허브종류, 채소 등을 심어 놓으셨다. 이것 관리하는 것도 정말 바쁘다고 한다.

“심지 않으면 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식물을 하나 심고 싹이 틀 때의 쾌감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재산 죽어서 하늘나라 갖고 갈 수 없어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노동을 하고, 남을 돕는 것은 제 인생의 사명이에요.”

또한 이곳에 온 첫날부터 박 사장은 알로에 예찬이 끊이지 않는다. 숙소의 화단 곳곳에는 수백 그루의 알로에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다. 알로에를 열심히 먹고 바르면 건강해 진다는 말에 솔깃한다. 잇몸의 염증도, 불에 데인 상처도 알로에 하나로 치료했단다. 알로에는 피부 진정효과도 있고 그을린 데나 화상에 탁월하다. 사이판과 같은 더운 나라에서 상비약으로 사용하기 좋다. 덕분에 매일 아침 저녁, 생 알로에로 얼굴 맛사지 하는 호사를 누렸다.

여행은 바로 사람과의 만남이다. 한 사람을 알아가고 배우는 시간이다. 바로 어제 밤 “빨리 나와서 하늘 좀 봐요”라고 방문을 두드리셨다. 황홀할 정도로 커다랗고 분명하고 동그란 달무리는 흔히 볼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우린 모두 땅만 보고 바삐 걸을 뿐 하늘을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늘에 대한 감흥은 사라지고, 땅에 메인 존재로 살아간다. 우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달무리를 한 시간도 넘게 보면서 신비감에 젖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박준수 사장과 함께 보았던 사이판의 맑고 투명한 밤하늘의 달무리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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