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행정실무사는 일·가정 양립을 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아이셋을 키우며 시부모님을 모시는 상황에서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오면서 두려움과 우울감은 더 밀려왔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자 하던 찰나 ‘학교사회복지사’가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90년대 중반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수업을 가르치셨던 교수님을 만나게 됐다. 복지재단을 설립해 여러 산하기관을 운영하고 계셨던 교수님께서는 재단 산하기관에서 일을 하기를 권유하셨다. 그렇게 노인복지에 뛰어들게 됐다. 인생계획에 없던 길, 이따금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큼은 행복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홍승억 남천안노인요양원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천안신창노인복지센터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8월 재단 산하기관 중 남천안노인요양원 사무국장 발령을 받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은 365일 생활하는 시설이라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답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에요. 특히 남자어르신들은 말수가 적으시고 표현력이 적어 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할 때가 있어요. 보통 타 요양원은 어르신이 운명하실 때 2~3일 전 병원으로 옮기지만, 남천안노인요양원은 보호자분들이 요양원에서 운명하시기를 요청하세요.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어요. 4인실 쓰시는 어르신께서 소천 하시려고 해서 방을 옮기려 하는데 같은 방을 쓰시는 세분 어르신께서 옮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몇 년 동안 같이 살았으니 갈 때도 같이 있어주고 싶다는 거였죠. 그렇게 다 같이 정중하게 어르신을 보내드린 기억이 납니다.”

홍승억 사무국장이 근무하는 남천안노인요양원(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대평리)은 ‘상호 존중하고 서로 귀하게’라는 재단의 설립이념에 맞춰 어르신들이 체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곳이다. 홍 씨는 매일 오전, 오후 60분의 어르신 라운딩을 하며 운영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일주일에 한번은 사무국 회의를 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실 밖에서 보는 복지사는 좋은 일 하는 사람이죠. 후원물품 드리고, 대상자를 만나 상담하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공문서 작성, 가계도 그리기, 생태도 그리기 등 사례관리 후에 해야 할 행정처리도 많고 힘들죠. 처음 입사한 사회복지사들은 이를 불만으로 여겨요. 복사하기, 팩스보내기 등 행정처리 능력을 완수하고 당차게 일해야 하는 데 말이죠. 또 일하다보면 복지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걸 알 수 있어요. 아파트에 거주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은 행사나 물품수령 등을 손쉽게 하시는데 주택에 사시는 어르신들은 상대적으로 소식을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든요. 복지사들 역시 한 곳에서 여러 대상자들을 만나 일처리를 빨리 할 수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매사 똑 부러지게 일하는 홍 사무국장은 워킹맘으로써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도 많다고 했다. 한번은 빨래가 밀려 아침에 학교 가려고 하는데 아이 양말이 없어 편의점에서 급하게 사서 신겨 등교시킨 일도 있단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엄마처럼 되고 싶다,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는 어른의 등을 보고 자란다’라는 옛말이 들어맞는다.

“세 아이 중 첫째는 복지사를 꿈꿔서 사회복지학과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둘째와 셋째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며 꿈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어요. 엄마가 복지기관에서 일을 하니까 확실히 봉사의 접근이 쉬워요. 봉사활동이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식사케어를 하더라도 보다 전문성 있게 한 어르신을 지정해서 갈 때마다 그 어르신을 케어하게 되니까 어르신의 특성을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자신들 스스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도 기르게 되었어요.”

홍 사무국장은 지난해 3월부터 평택의 국제대학교 사회복지과에서 자원봉사론, 청소년복지론을 강의하고 있다. 올해는 노인복지론을 가르치며 이론과 현장을 접목해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사과정 6학기에 접어든 홍 씨는 올해 박사학위 논문을 취득하는 목표를 세웠다.

“가까운 일본의 장수마을에 가보고 싶어요. 최종적으로 저의 꿈인 그룹홈을 설립하기 위해 벤치마킹을 하고 싶거든요. 이제는 어르신들이 제 부모 같아요. 어르신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힘쓰고 싶습니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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