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을 앓고 난 뒤라서 그랬을까? 아이가 결막염에 걸려 월요일 아침부터 비상이 걸렸다. 전염병이라 어린이 집에 등원할 수 없는데 어렵게 잡은 인터뷰를 취소할 수도 없고 해서 서울에 있는 친정 엄마에게 S.O.S를 요청했다.

다행히 친정 엄마가 달려와 줘서 아이를 맡기고 일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이렇듯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집에 일이 생기면 아이엄마는 공적인 일인 회사 일을 하는 데 있어 큰 지장을 받는다. 누군가의 절대적 도움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을 그린 그림책이 있다. 바로 ‘이상한 엄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인 ‘이상한 엄마’는 아이가 아파서 조퇴를 했는데도 회사 일 때문에 집에 가 보지 못하는 엄마를 하늘에서 선녀 할머니가 내려와 도와주는 내용을 담았다.

아이가 아플 때처럼 누군가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했던 엄마들이 깊이 공감하는 이 그림책을 보면서 친정 엄마를 떠올렸다. 이번에 아이가 아플 때 달려와 준 친정 엄마는 분명 내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이 선녀와 나는 애증의 관계다.

딸인 내가 아쉬울 때 엄마를 불러 놓고 뭔 불평이냐 싶지만 아이를 맡긴 죄인이라 그동안 참았는데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딸집이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울 엄마는 우리집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집안일 안 도와줘도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빨래며 설거지, 집안 정리를 당신 마음대로 해놓는다.

그런 친정 엄마와 몇 번 싸우고 난 뒤에는 내가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 엄마가 가고 나서 두 번 일하는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참아왔다. 그러던 게 결국 터졌다. 이번에 오셔서 김치 냉장고의 김치를 다 꺼내 당신 마음대로 분류해 비닐봉투에 담아 종량제 버리는 곳에 가져다 버리신 거다. 그래서 짜증을 내버렸다. 엄마는 당신이 못 배워서 딸이 무시한다며 화를 내고 가셨고, 이후 카톡으로도 계속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대화가 오갔고 이후 지금까지 냉전 상태다.

엄마가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해 주는 게 싫다고 하면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적인 수준으로 집안일을 해 주는 것이라면 나도 아마 불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전자렌지 위치가 당신 마음에 안 든다며 다른 곳으로 옮길 정도로 정리를 해 놓는다. 표면에 나와 있는 것만 정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집의 구조나 물건의 위치까지 마음대로 해버린다.

그런데 이런 것에 둔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굉장히 민감한 성격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춘기 시절 내 방을 엉망으로 해 놓은 남동생에게 화를 낼 때 엄마는 한 번도 동생을 나무란 적이 없었다. 아마 엄마와 남동생의 사고방식과 내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가족이니까 허물없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싶은 사람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친정 엄마와 내가 겪는 갈등의 본질이다.

이번엔 나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풀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남동생을 만날 기회가 있어 하소연 삼아 이야기 했다. 남동생은 엄마가 집안일을 해 줄 땐 ‘아이고, 얘가 얼마나 바쁘면 이렇게 엉망으로 해놓나. 나라도 해줘야지’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란 이야기를 전했다.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 감정에 휩싸여 표면에 보이는 잔소리가 싫고 당신 마음대로 휘젓고 가는 게 싫다는 생각만 했는데, 엄마 마음의 처음 출발과 목적은 그게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엄마가 나에게 표현하는 것, 자신의 의도를 표출하는 행동이 나와 맞지 않지만 그것 때문에 엄마의 본의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딸을 위해 해 주고 싶었던, 내가 보지 못한 엄마의 본래 마음을 내가 보지 못한 게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였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갈등을 겪을 때 감정에 휩싸여 상대의 본심을 보지 못한다. 화나는 마음을 멈추고 상대방이 보여주는 행동에 숨겨진 본래 마음을 생각해 본다면 갈등이 해결될 텐데, 이 간단한 일이 쉽지 않다.

너무나 당연했던 엄마의 본심을 보지 않고 화만 냈던 게 무척이나 미안한 요즘 명절을 핑계 삼아 화해를 시도할 생각이다. 앞으로는 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엄마의 본래 마음을 생각하며 화나는 마음을 돌려야겠다. 엄마가 자신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해 딸의 집을 청소하진 않을 텐데 내가 너무 못된 딸이었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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