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팔달문 근처에 마을톡(TALK)이라는 공간이 있다.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마을 주민들에게 무료로 대여되는 공간으로 배움과 나눔이 함께 하는 곳이다.

“저희 ‘백암재단’은 문구유통업을 하셨던 저의 선친인 故 이홍종 사장님이 설립한 사회복지 재단입니다. 아마 문구업계 최초의 사회복지재단일텐데요. 청소년들의 꿈을 지원하는 복지 재단을 만들기 위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아버님의 뜻을 이어받고자 저도 다른 일을 하다 지금은 재단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백암재단 이원준 이사는 재단 창시자인 이홍종 사장의 자제로 현재 대표 이사를 맡고 있다. ‘백암’이라는 이름의 의미와 그 뜻을 담은 로고부터 차근히 안내해주는 그의 모습에서 재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산 위의 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 산 아래로 굴러굴러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르렀을 때는 빛나는 하얀 돌이 되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이 백암재단의 지원을 통해 이 세상을 밝게 빛나게 하는 인재가 될 것이라는 염원을 담아 흰돌이라는 뜻의 ‘백암’을 재단의 이름과 로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백암재단은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복지사업을 주사업으로 하는 곳이다. 학비지원 사업, 장학관 사업, 장애아동 스포츠 지원 사업,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등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청소년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많은 사회복지단체들이 특정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거나 한 가지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백암재단은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최근 재단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업은 장학관 사업과 마을톡 사업이에요. 대학생들이 학교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이 등록금 다음으로 주거 문제에요. 등록금은 많은 곳에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주거문제는 해결책이 전무한 상태지요. 그래서 저희 재단에서 장학금 지원을 위해 수익사업을 하던 서울 시내 원룸 3곳을 장학관으로 열었어요. 모두 역세권에 위치한 풀옵션 1인 1실 원룸이에요. 입실비를 비롯한 유지비와 관리비까지 모두 무상이고, 총 56명의 장학생을 선발해서 1년간 장학관을 제공하는 데 평균 경쟁률이 10대 1정도 됩니다.”

파격적인 주거지원을 하고 있는 백암 재단의 장학관 사업은 지원의 규모만 놀라운 게 아니라 운영방식도 혁신적이다. 장학관 3곳 모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치회를 구성하여 운영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자치회장과 층장 등 장학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공동체를 조직하고 그 운영 방식을 결정하며 그것에 따라 운영한다. 이러한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무료 기숙사 제공보다 더욱 값진 경험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관리비와 유지비를 학생들 수만큼 나누어서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보다 좀 더 의미 있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학생들에게 자율기부 형태로 받고 있어요. 물론, 전체 관리 및 유지비에 많이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공동체에 기부를 하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얻는 교육적 효과가 더 크기에 이렇게 하고 있어요.”

이원준 이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눔의 선순환이다. 재단을 통해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다시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백암 재단 사업의 특징이다.

“마을톡 사업도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서로 재능 나눌 수 있으려면 먼저 재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성품글쓰기 강사 양성과정, 종이접기 강사 양성 과정을 개설해 주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거기서 양성된 강사들이 마을톡에서 무료로 재능 나눔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마련했지만 재능 나눔이 활발히 되지 않을 때는 그것이 잘 순환되도록 길을 터주는 게 저희 재단이 할 일이죠.”

이렇듯 백암 재단 사업의 목적은 단순히 어느 취약계층을 목표로 돕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 삶을 완성해 나가는 데 있다. 그래서 재단의 도움을 받았을 때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고, 기부 및 나눔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두고 있다.

“저희처럼 비영리조직은 남 좋은 일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단체에요.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가시화 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것에 지치는 직원들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기질과 자질은 필요하다보니 관리자로서 직원관리와 비영리조직의 한계가 재단 운영에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에요.”

이 이사는 이외에도 법률적으로 재단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고충을 이야기했다. 교차로 무가지의 창간자 황필상 씨가 만든 재단이 자산이 100억인데 증여세로 20억을 내야 해서 현재 문을 닫게 된 상황이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장학재단을 만들고자 해도 세법상 상속세와 증여세가 문제가 되어 좋은 뜻이 펼쳐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또,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사회복지법인과 관련된 법안도 현재 사회복지단체들이 활동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늘 어려운 곳을 찾아나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그것이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백암재단 이원준 이사가 지치지 않고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그의 뜻이 왜곡되지 않고 올곧이 펼쳐질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우리가 함께 노력하는 일에 달려 있다. 음지에서 쉬지 않고 구르며 일하는 하얀돌들이 마침내 세상에서 밝게 빛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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