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촛불집회에 대항해 박 대통령 탄핵 기각을 외치는 우익성향의 단체들이다.
처음엔 50-60대 노년층으로 그 숫자가 미미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세를 불려간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구정 직전 인터넷 TV ‘정규재 뉴스’라는 프로에 깜짝 출현, 요상한 변명의 인터뷰를 한 이후 태극기 부대는 급격히 불어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데군데 젊은 참여자들이 눈에 띄지만 여전히 주요 연령대는 60대 이상 장년·노년층이다. 추운 날씨에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들 노년층은 촛불 대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다. 왜 생뚱맞게 성조기를 들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고 촛불민심을 비아냥거린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과 탄핵심판에 대통령 측 대리인 중 한 사람인 서석구 변호사가 있다.

만화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처럼 태극기를 몸에 휘휘감은 서석구 변호사는 어버이연합의 고문이기도 하다. 어버이연합이란 전경련으로부터 돈을 받고 관제시위에 동원된 전력이 있는 어용단체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 이번에도 돈을 받고 동원된 노인들 아닌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은 “민심은 촛불이 아니라 태극기다”고 억지 주장을 외치며 헌재의 탄핵심판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여론전은 처음부터 대가리 숫자 싸움만 같아 씁쓸하다.
어쨌든 그렇게 불어난 숫자에 고무되었는지 윤상현(새누리당 의원), 김문수(전 경기도 지사), 이인제 (새누리당 고문) 등 현역 정치인이 연단에 모습을 나타냈다.

윤상현 의원은 “국회에서 박대통령 탄핵안을 졸속으로 의결하고 적법한 절차 또한 거치지 않아 탄핵심판은 애초부터 원천무효”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것은 선동이다.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선동이며, 뒤에 숨긴 의도 또한 떳떳하지 못하다. 분명 국회는 여야가 합의해 탄핵안을 표결에 붙였으며 찬성 234표 반대 56표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키지 않았는가. 간단하게 말해 탄핵반대 여론을 부추겨 탄핵을 기각시키겠다는 의도이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탄핵의 시간을 지연시켜 보겠다는 꼼수일 뿐이다. 그 얄팍한 꼼수를 위해 ‘이번 사건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니라 호스트바 출신 고영태의 불륜 게이트’라고 매도한다. 진실을 가리고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혐오스럽지 않은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촛불을 들든 태극기를 흔들든 그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태극기 부대의 구호는 왜 그토록 살벌한 것인가.
‘빨갱이와 배신자 놈들한테 이 나라를 갖다 바칠 수 없다!’
‘계엄령이 답이다!’ ‘종북은 죽여도 된다!’ 등 폭력을 부추기는 구호가 들려온다.

그리고 더욱 섬뜩한 것은 ‘서북청년단’의 출현이다.
청계 광장에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이 꾸민 텐트촌에 맞서 조성된 ‘태극기 텐트촌’이 생겨났고, 태극기 집회 측 참가자들은 이 텐트를 ‘애국 텐트’라 부른다. 바로 그 텐트 중에 ‘서북청년단’ 이란 피켓이 보인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단체인가.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 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 백색 테러를 자행한 극우 단체이다. 바로 그 무자비한 백색 테러집단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들이 자행하는 폭력적 공포분위기는 기우가 아니라 현실로 나타났다. 11일 시위 현장에서 취재하던 JTBC 카메라맨을 태극기 봉으로 후려치며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다. 큰 부상이 아니라 대행이었지만 다시 과격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도 없다.

태극기는 나라의 상징이다. 명분 없는 시위를 위해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불려나온 태극기가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리고 태극기로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태극기에 똥칠을 하는 행위이다. 알아서 멈추어야 한다. 헌재의 심판은 원칙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오태영(극작가)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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