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시골 큰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친정 엄마와 남동생과 나 셋이서 전주를 향해 출발했다.

문상 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이렇게 친정 식구 세 명만 모인 것이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가족이라 불리는 이 구성이 각자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른 후 부터는 늘 아이가 함께이거나 자신의 옆지기가 함께이거나 했지 온전히 셋이 모인 건 꽤 오랜만이었다.

전주로 가는 길에 우리 셋은 다른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요즘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이야기했다. 그렇게 흘러흘러 옛날 일들을 회상하는 쪽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셋의 공통된 추억에 다다르자 같은 사건인데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친정 엄마와 남동생과 나의 기억과 의견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우리 셋이 이렇게 함께 하는 이 자리에 안 계셔서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함께 있으면 어머니랑 또 싸우셨을 거라고 동생이 이야기했다. 그 의견에 심정적으로 공감하기도 하지만 아버지는 술을 드실 뿐이었고 그것을 못 마땅해 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늘 우리 가족을 시끄럽게 했던 것이므로 난 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술꾼 남편 때문에 싸운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던 것은 사실이었고 두 분이 그걸로 많이 다툰 것도 사실인데 그것에 대해 우리 셋은 제각각 다른 추억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딸의 입장에서는 아빠가 애처로웠고, 아들은 두 분의 불화가 불편했고, 아내였던 어머니는 모든 게 아버지 탓으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서로 다른 추억은 동생이 아버지에 대해 추억 한 조각을 꺼내자 더욱 극명해졌다.

동생이 중학교 때 시골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이미 술이 많이 취한 상태인데도 동생을 데리고 동네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나 00요, 술 있소?” 했다고 한다. 그 가게가 문방구이건 철물점이건 상관이 없었고 그런 거침없는 아버지의 돌발행동에 동생은 매우 놀랐지만 가게 주인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술을 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동생은 어릴 때 그런 아버지가 싫고 그 시간이 매우 지루하고 왜 집에서 술을 안 드시고 나를 데리고 이렇게 하시나 싶었는데 자신이 아빠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을 알겠다고 했다. 자신이 살았던 고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들을 보여주며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딸을 키우는 아빠의 마음이 되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냥 술 한 잔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그런 거지 뭔 소리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 생각에는 동생이 말한 의도도 맞고, 어머니가 말한 것도 맞다. 술도 한 잔 더 먹고 싶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동네 사람들을 통해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던 아버지라 생각된다. 그런데, 딸인 나에게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이 추억을 소환하여 이야기 나눌 때 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우린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아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끼며 오랜 시간 살아왔지만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은 서로 달랐다. 모든 과거는 팩트로 남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쓰여지는 것이므로 우린 따로 또 같은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추억이 같아서 좋은 게 아닐 그냥 그 추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슬픈 이야기든, 행복한 이야기든 추억은 어떤 내용이냐 보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에 좋은 것 같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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