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랑니를 뺐다. 20대 초반에 났던 사랑니를 40대가 되어서야 결국 빼냈다. 우리가 흔히 사랑니라고 부르는 치아는 큰 어금니 중 세 번째 위치인 제3대구치를 말한다. 구강 내에 제일 늦게 나오는 치아이다. 보통 사춘기 이후 17~25세 무렵에 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라서인지 ‘첫사랑을 앓듯 아프다’ 는 의미로 ‘사랑니’ 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단다. 그래서인지 사랑니는 날 때도 아프고, 뺄 때도 아프다.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어금니처럼 사용해오던 사랑니가 작년부터 염증이 나거나 잇몸을 부어오르게 했다. 치과에 갔을 때도 좀 더 두고 써도 된다는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에서부터 계속 거슬린다. 사랑니가 정상적인 어금니 모양으로 나와 관리가 잘 되면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치열의 가장 안쪽 공간이 좁은 상태에서 나오면서 모양이 이상한 경우가 많다.

사랑니도 원래는 음식물을 씹고 소화하기 좋은 형태로 만드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점점 원시인에게 필수적인 턱뼈와 어금니 등이 퇴화했다. 부드럽고 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과를 편안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웬만큼 아픔을 참고 있다가 치과를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록색 소독포를 가면처럼 쓰고 누워 초조하게 손을 붙잡고 있는데 “마취주사 놓겠습니다. 따끔합니다” 라는 말로 시술이 시작된다. 잇몸 사이로 뭔가 시원한 것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마취가 되길 기다렸다가 본격적으로 발치가 시작된다. 면적도 넓고 어느 정도 어금니처럼 크게 났던 사랑니여서 의사 역시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하지만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이를 가는 기계음과 우드득 거리며 턱뼈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소리, 의사가 힘겹게 손놀림을 하는 소리 등이 들린다.

결국 30분 정도의 시술이 길어져 40분이 넘어갔다. 의사 말로는 한 번에 뽑히지가 않아서 여러 조각을 내어서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빠진 이를 보여주었다. 보이는 부분은 작을 줄 알았는데, 조각내어진 사랑니는 부피가 꽤 많았다. 발치한 후 두툼한 거즈를 시술 부위에 꼭 물고 있으라고 하면서 지혈될 때까지 빼지 말라 한다. 입술과 턱 아래가 얼얼하고 아프다. 마취가 풀리는데 몇 시간 걸린단다.

치료 후 구멍 뚫린 어금니를 건네받았을 때의 생경함이란. 사랑니의 뿌리가 어찌나 깊은지 저 큰 뿌리가 입안에 20년 넘게 박혀 있었다니. 내 입속이 동굴이고, 사랑니는 동굴 속에 깊이 뿌리박고 살던 생명체 같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 는 속담이 있다. 밤낮으로 괴롭히던 것이 없어져 시원하다는 뜻이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을 전후로 민주주의의 생명인 합리적이고도 상식적인 대화와 절충 소식은 여간해서는 들어 보기 어렵다. 독선과 아집, 더러운 욕망으로 뭉쳐진 뉴스만 하루 세끼 밥 먹듯 접하는 현실이다. 지금껏 대한민국의 일부라고 여기며 살아왔다면 사랑니를 빼야 할 때다. 사랑니가 빠진 공간이 처음에는 휑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새 살이 돋아 오른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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