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절대와 자유’ 전시를 보고 왔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덕수궁 밖이 탄핵 반대 집회로 시끄러워서 고요한 공간을 찾기엔 미술관이 제격인 듯싶었다. 유영국,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전시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조우하는 내내 뜻밖의 횡재를 누린 기분이었다.

잠시 그에 대해 설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1916년 경상북도 울진의 산골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1930년대 도쿄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한 그는 1943년 태평양전쟁의 포화 속에서 귀국,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어부로, 양조장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다 1955년 이후 서울에서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재개, 2002년 타계할 때까지 작품 제작에 몰두해 400여점의 유화작품을 남긴다.

4개 전시실은 유영국의 작품을 시대별로 풀어놓고 있었다. ‘1916~43 도쿄 모던, 1943~59 추상을 향하여’ ‘1960~64 장엄한 자연과의 만남’ ‘1965~70 조형실험’ ‘1970~90년대 자연과 함께’ 이렇게. 그의 작품은 산, 언덕, 계곡, 노을 등 일상적으로 만나는 자연의 요소들을 추상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팜플렛을 참고하자면 그의 작품은 고향 울진의 깊은 바다, 장엄한 산맥, 맑은 계곡, 붉은 태양 등을 연상시킨다. 이 추상화된 조형의 힘은 직접적으로 자연의 '정수(essence)'에 다가가는 체험으로 관객을 이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난 추상미술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 고로 미술작품에 대한 ‘앎’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자꾸만 내 발걸음을 붙잡아뒀다.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만 클라이맥스는 유영국이 방배동 자택에서 사용했던 작업탁자와 화구들을 보고나서였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그림을 그린 그의 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는 ‘정국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인들이 내게 ‘아니 얼마나 괜찮길래’라고 묻는다면,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에서 본 모나리자보다 감동적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우선 학예연구사가 유영국이라는 인물과 작품을 최대한 다각도로 조망해보는 작업을 충실히 했다고 생각한다. 작품 100여 점과 자료 50여 점을 적절하게 배치한 건 물론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생애 남긴 말 등이 감동적이었다. 그의 아내를 비롯한 주변인물을 인터뷰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이중섭 100주년 전시를 기획했던 주역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험난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마크 로스코(미국 추상 표현주의 화가)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빼어난 조형미를 선보인 유영국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100% 프랑스제 기획전을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나섰지 자체 기획전에는 약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마다 취향,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경기도내 있는 미술관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수집, 보관, 전시, 교육에만 국한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여기 저기 어딘가에서 전시된, 이곳저곳 떠돌다가 미술관에 안착됐다는 기분이 든 적도 있다. 나름 꽤 큰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있으신 분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뭐 특별한 기획을 하고 싶어도 항상 한계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꼭 경기도내 작가 작품을 가져와야 한다’는 룰이 있어서 답답해요. 전시만 좋으면 정말 입소문이 나서 몰리고 찾아올 텐데.” 듣는 필자 역시 참 아쉬웠다.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을 위해 ‘인간의 지성’, ‘정서’, ‘영혼’, ‘몸’ 이렇게 네 가지 능력을 제시했다. 최첨단기술보다도 예술 영역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문화·예술계에 걸친 비리, 블랙리스트 사건 등의 이유로 예술계에 위기가 찾아온 지금,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예술의 본질을 잊어선 안 된다. 미술관 역시 장소 안에만 갇혀 있지 말고, 그 이상의 무엇을 담아낼 지 들여다봐야 한다. 위기만큼의 기회와 가능성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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