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시에 자리한 동구릉, 배면에서 바라본 건원릉의 전경

동북면의 호랑이, 고려의 영웅으로

흔히들 이성계를 ‘동북면의 호랑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표현을 통해 동북면은 이성계의 정치적 기반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동북면이 위치한 쌍성총관부는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의 증조부였던 이행리(익조)를 시작으로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환조)에 이르기까지 원에 협력하며, 지방의 군벌로 성장을 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성계는 동북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쌍성총관부를 탈환하고자 했던 공민왕(재위 1351~1374)에게 협력하며, 원나라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렇게 이성계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이후 이성계는 고려를 침입한 홍건적을 비롯하여, 원나라 니하추의 군대를 격파하는 등의 공을 세우게 된다. 이 가운데 무장으로서 이성계의 이름을 드높인 것은 이 시기 고려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왜구를 맞아 대승을 거두었던 황산대첩이었다.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시 인근에서 이카바츠가 이끄는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이성계는 새로운 실력자로서 신망을 받게 되고, 이성계를 주목했던 이들이 바로 당시 권문세족과 함께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했던 신진사대부였다. 그리고 이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삼봉 정도전(1342∼1398)과 포은 정몽주(1337~1392)이다.

보물 제1924호 지정된 삼봉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위화도 회군과 고려의 멸망

고려의 개혁을 주도하던 공민왕이 피살된 뒤 고려의 대내외적 환경은 크게 요동을 치게 된다. 내적으로 고려를 주도했던 권문세족이 몰락하고 그 자리에는 신진사대부들이 자리하게 되며, 외적으로 원나라가 몰락한 뒤 들어선 명나라가 사신을 보내 철령 이북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철령위를 설치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고려조정에서는 최영을 필두로 ‘요동정벌론’이 등장하게 되고, 여기에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내세워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이 힘으로 밀어붙여 공요군을 편성하고,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우군도통사 이성계에게 8만의 공요군을 출전하게 한다. 본래 최영은 팔도도통사로 전장에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우왕의 만류에 따라 개성에 남게 된다. 공요군이 위화도에 집결 한 뒤에도 이성계는 두 번의 상소를 올려 철군할 것을 주장했지만, 우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마침내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 회군을 단행, 개경을 무력으로 점령하게 된다. 이후 최영을 유배 후에 사사하였으며, 우왕에 대한 폐위와 함께 우왕의 아들인 창에 대한 폐위마저 단행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왕과 창왕은 왕 씨가 아닌 신 씨라는 폐가입진의 논리를 내세우게 된다. 이어 신종의 7세손인 정창군 왕요를 왕으로 옹립하게 되니 이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이다. 위화도 회군은 고려 멸망이라는 문을 연 일대의 사건이자, 조선 창업의 첫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두고두고 기록이 되는 사건이다. 공양왕이 옹립된 뒤 신진사대부 내에서는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게 되는데, 온건파는 정몽주를 위시한 이색 등의 사대부들로 고려왕조라는 틀을 유지한 채 개혁을 단행해야 된다고 보았으나, 급진파의 경우 정도전, 남은, 윤소종 등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역성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양측의 충돌은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을 당하며, 급진파의 득세로 이어져 이내 공양양이 폐위되며 고려는 멸망하게 된다.

청계천 광통교 아래 남아있는 정릉의 병풍석, 계모를 향한 태종을 분노를 느낄 수가 있는 곳이다.

조선의 건국, 그리고 왕자의 난

1392년 수창궁에서 즉위한 이성계는 고려의 법통을 이어간다고 천명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조치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반발이 심한 고려의 구신들과 백성들을 달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고,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게 된다. 새로운 나라 조선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강화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조선의 건국 뒤에 찾아온 왕자의 난은 이성계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왕자의 난은 조선의 첫 세자를 정하는데, 계비인 신덕왕후 강 씨 소생의 의안대군 이방석(1382∼1398)을 세우면서, 정비인 신의왕후 한 씨의 아들인 이방원이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게다가 정비였던 신의왕후가 왕후가 아닌 후궁의 지위로 격하되고, 정도전이 사병제도 마저 깨뜨리려고 하자 이에 분노한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 남은 등을 비롯하여 세자였던 의안대군을 살해했다. 이러한 참담한 결과에 이성계는 크게 화를 내면서 왕위를 둘째 아들인 이방과에게 물려주게 되니 이가 정종이다. 그리고 옥새를 가지고 함흥으로 갔다고 하는데, 훗날 왕이 된 태종(이방원 재위: 1400~1418)이 함흥으로 사자를 보내면, 이성계가 사자를 죽여 돌아오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함흥차사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만년의 태조는 불교에 귀의하는 한편, 먼저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 강 씨의 정릉을 매일 같이 찾았다고 하는데, 계비였던 신덕왕후 곁에 묻히고 싶다고 소망하고, 장지도 미리 결정을 했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가 승하한 뒤 태종은 아버지의 소망을 무시한 채, 지금의 구리시에 위치한 동구릉 내 건원릉을 조성하고, 미워했던 계모 신덕왕후 강 씨의 정릉을 양주(현재의 성북구)로 이장시킨 뒤, 난간석과 병풍석 등의 석재를 광통교 공사에 쓰게 했는데, 지금도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헌릉(태종)과 함께 유일하게 왕릉에 신도비가 있는 현장

건원릉, 조선 왕릉의 표준이 되다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건원릉은 동구릉 내 최초로 능역이 조성된 곳이다. 건원릉은 공민왕릉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건원릉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이가 박자청(1357~1423)이다. 건원릉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릉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이 되었지만, 태종에 의해 정릉이 크게 훼손이 되면서 건원릉은 조선 왕릉의 표준이 된다는 점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건원릉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 가운데 건원릉은 태종 이방원의 헌릉과 유일하게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건원릉의 봉분에는 함흥에서 가져온 억새가 심어져 있어 매년 한식날이면 억새를 베는 행사가 이어진다. 특히 가을에 건원릉을 방문하면 억새가 만발한 건원릉을 볼 수 있으니, 꼭 이 시기에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여말선초 시기의 극심했던 혼란기를 수습하고 조선을 창업했던 태조 이성계, 왕이 되는 과정에서 무던히도 많은 정적들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랐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아들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을 지켜봤다는 점에서 권력이란 비정함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할지 건원릉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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