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남 신세계백화점에 갔다.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마침 아이 분유가 떨어져서 백화점 내 마트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국내산 분유가 단 한 통도 없는 게 아닌가. 독일, 미국 등 수입 분유만 여러 개 보일뿐. 가격표를 보니 2~2.5배 높았다. 수입 코너도 아니건만, 이상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리는 이것만 들여놓는다. 국내 분유는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황당했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주변 공기마저 탁하게 느껴졌다. 발걸음을 돌렸다.

여러 이유를 추측해봤다. 국내 업체에서 제조하는 분유들이 위생상의 문제를 일으켜서? 아님 강남은 국내산 분유 수요가 전혀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브랜드를 떠나 국내산이 없었다는 건 마음에 쓰였다. 하기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이런 글을 여럿 본 적이 있었다. “국산은 믿고 쓸 만한 게 없다”, “소아과에서도 아이가 배앓이를 하면 외국 분유를 추천해준다” 등등. 심지어 분유를 탈 물까지 외제로 쓰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니 놀랄 일도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지난해 국립극단은 ‘한국인의 초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극 중 한 남자가 세숫대야에 아기(인형)와 분유를 담아 물에 띄워 보내며 큰 목소리로 외치는 장면이 있다. “아들!.... 일단 강남으로만 가면 술술 풀려. 풀리게 되어있어, 다. 먹는 분유도 외제다? 산양분유 같은 거... 당연히 맛이 끝내주지. 거기는 딴 나라다~ 하늘도 파랗고 사람들 스타일도 다 멋져. 잘 가라 아들. 출세해 강남에서. 나처럼 살지 마!” 정곡을 콕콕 찌르는 대사 아닌가. 외제 유아용품을 사서 쓰는 데 익숙해진 요즘 부모의 육아 풍경을 그린 듯하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게 있다. 국내 방송사 기자의 취재에 의하면 수입 분유가 오히려 품질 검사는 허술하단다. 비싼 만큼 안전한 게 아니라는 것. 최초로 수입되는 것이 아니면 서류 검사로만 대충 끝나는 경우가 많단다. 정밀 검사나 재검사를 받는 확률도 적은 건 물론이고. 반대로 국산 분유는 지자체나 수의과학검역원에서 분기마다 한두 차례씩 제조 공장을 방문해 검사하기 때문에 품질 검사가 까다롭단다.

자신의 아이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엄마니까. 그런데 외국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신뢰만으로 몇 배나 비싼 값을 치르며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드 배치 보복으로 인한 중국 내 롯데 제품 불매운동이 격화되고 있다. 롯데 제품인 탄산수나 소주 등의 제품을 쌓아놓고 중기 등으로 부수는 과격한 퍼포먼스가 벌어지는가 하면 현지 마트 등에서는 롯데 제품 외 다른 업체 제품까지 진열에서 제외되고 있다. 한국산 식품에 대한 통관 거부 등 문제는 증폭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라,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자각이 든다.

때마침, 블로그 이웃이 ‘엄마의 선택(엄선)’이라는 어플을 추천했다. 상품명, 브랜드명으로 식품을 검색하면 식품 상세 정보를 알려주는 앱인데 식품첨가물 및 위험 정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유용하다. 단순히 외제여서가 아닌, 객관적인 품질을 따져 보고 구매하는 똑똑한 소비가 절실한 때 같다.

이소영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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