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한 단체에서 올해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면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20여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단체는 전국 각 지역에 지역 모임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리고 단체의 지향점은 매우 진보적인 쪽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작년 1년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과 최근 겪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내가 바라고 생각했던 단체의 모습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발단은 정확하고 명확하지 않은 기준에 있었다. 이 단체는 가입과 동시에 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신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 단체는 매년 기수라는 것이 존재한다. 기수별로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 신입동기들 간의 끈끈한 우정처럼 함께 시작한 같은 처지의 사람들만의 유대가 있다. 그런데, 이 신입 기간에 한 번도 활동을 하지 않은 한 회원이 올해 본격적인 단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입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단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은 다른 신입들이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이므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나 기준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단체 운영위의 회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신입활동을 하지 않은 것을 올해 단체의 본 활동과 병행하면서 하는 것으로 약속했으니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것은 단체 회칙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답답했던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이 이야기 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의를 제기한 집단과 결정을 내린 집단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각자의 대표를 통해 전달을 할 뿐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것이 불통이라는 걸 절감했다.

기존에 없었던 소통 구조라도 혹은 회칙에는 없는 자리라도 단체의 회원들이 요구하는 이상 직접적인 설명과 설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회칙과 원칙은 회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거기에 없는 것이더라도 지금 필요하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쪽은 소통을 원하고 한쪽은 대표성을 가진 운영위의 결정만을 강조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된 박근헤 정부의 불통이 떠올랐다. 국민들은 소통을 원하는 데 나는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니 대표성을 가진 내가 결정한 것에 따르라는 식의 불통이 진보적이라는 시민 단체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것을 보며 시작과 출발 혹은 그 단체가 지향하는 것과 상관없이 단체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정체된 체제는 폐단을 낳을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이에 신입회원들은 함께 모여 논의를 거듭해 단체 내에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일이 진행되어 온 결과를 모르는 바 아니고, 우리의 성명을 통해 어떠한 개인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회원 모두 알아야 한다는 취지하에 공개적인 곳에 함께 작성한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를 읽은 기존 단체 회원들의 반응과 운영위원들의 반응은 더욱 낯설었다. 왜 다같이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불통은 박근혜 전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작은 일도 함께 나누고 공론화 하여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더 무서운 불통의 문화를 낳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 발끈하는 이들에게 ‘민감하다’, ‘까칠하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은 다시 생각해 보면 깨어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소통하기 위해 민감해지고 깨어나야 한다. 불통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선 한 명의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지은 기자  mail@newstower.co.kr

<저작권자 © 뉴스타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