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통합, 단결 같은 말을 좋아한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국론통일’ 혹은 ‘총회단결’, ‘언론통폐합’, ‘여론통일’ 등을 외쳤다. 익숙한 프레임이자 이루어야 할 당위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과연 민주주의는 국민대통합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가치일까.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지자 정치권, 언론계, 종교계 모두 국민대통합을 주장한다. 보수와 진보 모두 통합을 이야기한다. 분열보다 통합이 좋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진정 ‘국민대통합’은 의미 있고 지향해야 할 가치인가. 통합이란 단어가 지닌 맹목적인 폭력성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는 수백 년의 민중의 갈등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얻어진 가치다. 하루아침에 민주주의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100년 넘게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던 역사가 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내면화하기 위해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코 민주주의는 통합의 역사가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더욱 분열되는 지리한 싸움들이 필요하다. 국민 대통합을 외치는 보수주의자들의 패러다임은 진부한 군사정권의 잔재다. 다양한 의견 및 소수의견을 무시하고 권력자의 목소리를 따르게 한다. 이는 수동적인 행동이다. 왜 통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스스로 묻지 않는다. 통합이 된 국민들은 통제 가능하다. 또다시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꼭두각시로 길들이기 쉽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듯하다. 역동적인 사회 변혁의 힘처럼 보인다. 또한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획일화된 주장을 ‘옳은’ 논리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지역갈등이나 서로 다른 ‘이견’ 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국민대통합’ 이라는 말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논리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통합의 가치에서 벗어난 자들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다. 장애인, 여성, 시민운동가, 비정규직, 성소수자, 비혼자, 외국인, 미혼모 등 ‘사회적 소수’ 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통합될 수 없는 구조다. 통합되지 않는 소수자들은 다수 강자의 논리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안정과 화합은 겉으로 보기에 긍정적인 가치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은 근대국가의 산물이다. 국가의 부속품으로 ‘산업일꾼’으로 생각한다. 구한말까지 백성들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다. 일본 식민지 당시 국가 동원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국민이다. 국민은 ‘황국신민’의 줄임말로 천황국의 신하된 백성을 뜻한다. 여전히 일본의 속국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제 국민대통합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자유롭게 서로 공존하며 주체적인 개개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민은 소시민이 결코 아니다. 사회적 약자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지닌 서민도 아니다. 시민은 자유롭게 의견을 내세우고 가정에서부터 사회까지 정치공론의 장에서 민주주의를 논하는 사람들이다. 민주주의가 꽃 피울 수 있는 토양은 바로 타인의 의견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회다. 국민대통합은 바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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