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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그리고 가족의 의미
김예니(청운대 강사) | 승인 2017.10.12 09:46

긴 추석연휴가 끝났다. 연휴동안 영부인은 ‘손수’ 장을 보시고 ‘직접’ 차례상을 차려 청와대에서 시어머님과 차례를 지냈다고 한다. 청와대가 앞장서 여성의 정성을 강조한 차례지내기를 홍보하시니 가족의 평화를 위해 연휴기간 이 한 몸 희생하는 것이 무슨 큰일이겠냐 싶어지는 분위기다.

며느리들은 여전히 매해 친정을 뒤로 미루고 시댁을 먼저 가는 것이 당연하고 남편의 조상님을 위해 차례상을 차리는데 노동력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를 주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실정이다. 과거의 질서에 길들여진 어른들을 배려하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양보한 것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함은 기대할 수도 없다. 가사노동에 적극적이던 남편마저 이때만 되면 부모님의 뒤에 숨어버린다. 자신의 조상을 위한 차례상을 준비하는 과정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를 ‘돕는’ 역할을 자처하면 그나마 나은 사람이다. 시대가 변했다는데 여자일과 남자일이 따로 있고 원래 어머니가 하던 일과 원래 아버지가 하지 않았던 일이 있는 것이다.

물론 가족은 만나서 반갑고 함께 있으면 좋고 행복하며 즐겁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가족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기꺼이, 혹은 하고 싶은 말을 꾹 누르며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여성들이 이번 추석 때도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들을 돌보면서 감정을 혹사당하며 일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명절의 모습은 비단 여성에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청년들 역시, 명절 연휴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기사를 봤다. 오죽하면 아무 말 하지 말고 힘내라는 말을 전하라는 광고까지 나왔겠는가. 오랜만에 만나 ‘니가 올해 몇 살이지?’하고 묻는 친척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이 무례한 경우가 많다. 얘기하고 싶지 않은 성적이나 진학, 취업에 대한 질문을 불쑥 던지거나 결혼과 가족계획에 대한 훈수를 두기 일쑤다. 과연 이런 것들이 미풍양속이나 어른에 대한 공경,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그대로 유지되어도 되는 것인가. 명절이고 연휴라면 가족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평등한 관계, 나이의 고하를 떠나 서로 예의를 지키는 관계, 갈등이 드러나도 이를 서로 인정하며 대화할 수 있는 민주적인 관계로 가족의 관계가 재정립되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매해 반복되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차례란 가정의 실정에 맞게 검소하게 차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예로부터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고 말하는 성균관 유학자의 인터뷰와 차례 지낸 후 남은 음식을 활용한 요리법에 대한 기사다. 이 두 기사는 단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명절이면 남을 정도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 붙어 있는 여성들의 현실과 사실 조상이 바란 것은 누군가의 희생에 기댄 넘치는 차례상이 아니라는 사실 사이의 간극.

명절과 가족의 참 의미에 대해 반문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무례함과 무심함을 합리화하지 않고, 힘없는 자에게 당연히 희생을 요구하지 않기 위해 가족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다.

김예니(청운대 강사)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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