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소재는 놀랍게도 멸치비늘. 멸치 비늘을 벗겨 조각조각 이어 붙여 천을 제작한 다음 작품을 만든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하찮은 존재. 작디작은 멸치 비늘의 허물을 벗겨내어 천을 만들어냅니다. 이어 붙여 바느질을 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죽은 생명의 허물에 다시금 온기를 불어 넣는 기분이랄까요!”

김상미 작가를 대안공간 눈의 <유목민:소갈머리 전>에서 만났다. 왜 전시 제목이 유목민일까. 우리 모두는 떠돌면서 살아간다. 유목민의 피가 흐른다고나 할까. 죽고 사는 것도 이동이고, 결혼하여 터전을 옮기는 것도 이동이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이동하고, 예술가는 전시를 위해 공간을 이동한다. 태어나고 죽는 것도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동이다.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도 집을 표현했다. 자작나무로 대를 만들고, 멸치비늘과 밴댕이 비늘로 천을 만든 것을 이어 붙였다. 텐트 형태의 집이다. 하지만 황금색처럼 혹은 은빛처럼 빛이 난다. 바닥에 흰색 벨벳 천을 깔아 놓아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다. 이곳에서 어떤 상상을 해도 좋을 듯하다.

“제가 처음 지은 집 같아요. 집을 짓는 것은 본능 같아요. 독립하는 것 같기도 하죠. 멸치와 밴댕이로 만든 집이에요. 이곳에 들어가 보셔도 되요. 생물의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죠.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을 들여다보는 상상을 해보세요.”

기발한 상상이다. 밴댕이 말린 것도 멸치처럼 육수를 낼 때 사용한다. 밴댕이 말린 것을 디포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속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서 남해안에서 잡히는 물고기인데, 다 자라도 손바닥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좁게 쓰는 사람을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소갈머리 같은 사람도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려고 이해하다 보면 조금은 알게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하찮게 버려지는 존재에 다시금 숨을 불어 넣어 새로운 생명이 된 셈이다. 김상미 작가의 작업은 매우 느리다. 손바닥만한 천 한 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이어 붙이고, 마른 다음 또 멸치비늘을 붙여 틈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작품을 만들며 어릴 때 구슬꿰기를 부업으로 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한다.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일하셨던 어머니의 작업이 김상미 작가의 멸치, 밴댕이 천으로 승화한 것은 아닐까. 누구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미술을 시작하게 된 우연한 계기를 이야기한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미술을 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벼룩신문에서 우연히 본 ‘조소’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결국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했다. ‘조소’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터무니없는 수업료를 받고도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본 조소 작가 덕택이다.

예술가는 이처럼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소재로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연결지어 창조를 해 나가는 사람 아닐까. 먹는 것을 소재로 조형물을 만들어 끊임없이 변용되고 재탄생하는 과정은 신비롭기만 하다. 앞으로 김상미 작가는 자신이 만든 멸치 비늘 천으로 옷이나 장식구, 소품 등을 만들어 볼 예정이다. 검푸른 넓은 바다를 헤엄치다가 고깃배의 어부에게 잡혀서 햇빛에 말려진 멸치. 이제는 김상미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집이 되었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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