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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정조의 효를 읽을 수 있는 ‘지지대비(遲遲臺碑)’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02.28 11:04

수원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지명에서 ‘효(孝)’가 들어간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명이 상징하듯 지금의 수원시를 만들게 된 배경에서 정조의 효를 찾을 수 있는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顯隆園) 이전과 관련이 있다. 흔히 책에서 글로 읽을 때와 현장에서 보는 관점은 다를 수가 있는데, 오늘 소개할 ‘지지대비(遲遲臺碑)’를 통해 정조의 효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의외로 ‘화성행행도’ 속 ‘시흥환어행렬도(始興還御行列圖)’ 속에 지금의 수원과 의왕의 경계인 지지대 고개가 표시되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자리한 지지대비의 전경
‘시흥환어행렬도’ 속 지지대 고개의 모습. 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지지대비에 세워진 하마비는 이곳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 왕위에 오른 뒤 13차례에 걸쳐 원행길에 나선 정조

영화 ‘사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영조(송강호 분)가 당시 세손인 정조(소지섭 분)의 청을 들어주어 사도세자의 부정적인 기록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영조는 청을 들어주었으니 사도세자에 대해 한 글자도 올리지 말 것을 이야기했는데, 당시는 왕조국가로 법보다 왕의 말이 더 우선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정조가 아무리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해도 선왕의 말을 거역하는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마음으로야 생부인 사도세자에 대해 왕으로 추존하고 싶어 했던 정조도 이것만은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인 ‘수은묘’를 ‘영우원’으로 고치고, 이후 장헌세자로 높인 뒤 ‘영우원’을 ‘현륭원’으로 고쳤다. 또한 당시 양주 배봉산에 있던 묘를 화산으로 이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원칙대로라면 영조의 명을 거스르게 된 모양이지만, 그 방식을 상소문을 통해 요청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했다는 점과 정조의 의지가 확고했기에 신하들도 좋게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현륭원이 화산으로 이전이 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수원부의 읍치의 이전이 결정되면서 수원 화성이 축성되었다. 공교롭게 지금의 수원시는 현륭원의 이전이 만든 나비효과인 셈이다. 왕위에 오른 뒤 정조는 살아생전에 총 13차례에 걸쳐 원행길에 나서게 되는데, 정조의 재위 기간을 고려하면 매년 수원을 방문했다. 당시의 원행은 ‘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와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통해 알 수가 있는데, 정조는 지금의 수원과 의왕의 경계인 지지대 고개를 지나 수원 화성으로 입성했다.

계단에 새겨진 臺·遲
지지대비가 모셔진 전각. 1807년 화성 어사 신현이 건립했다.
측면에서 바라본 지지대비의 비문

■ 지지대비에 얽힌 이야기, 정조의 효를 생각해볼 수 있는 현장

지지대 고개에 입성하던 정조는 수원 화성이 가까워질수록 행렬을 독려한 반면, 원행길을 마치고 한양으로 환궁하는 길에는 반대로 현륭원이 있는 화산을 바라보며 행렬이 늦어졌다. 때문에 늦는다는 의미 지(遲)를 써서 지지대 고개로 명명이 되었으며, 계단에는 이러한 의미를 담은 대(臺)와 지(遲)가 새겨져 있다. 당시 지지대 고개로 불렸던 이곳에 정조의 효심을 기리기 위한 ‘지지대비’를 세우게 되는데, 1807년 화성 어사 신현에 의해 건립되었다.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지지대비는 본래 현재와는 달리 계단이 3개밖에 없었지만 도로공사를 위해 지금처럼 계단이 16개가 있는 형태의 다소 경사각이 있는 형태로 변했다. 과거 사진을 보면 3개의 계단 아래 대(臺)와 지(遲)가 새겨져 있는데 반해 현재는 계단이 16개로 늘어나 올라가기 상당히 가파른 경사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정조하면 떠올리면 ‘효’라는 상징성 까닭에 수원시나 화성시 모두 효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간직한 배경이 되었다. 지지대비의 위치는 수원에서 사당역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면 지나게 되는 곳이라 익숙하게 지나치는 곳이다. 또한 이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수원 화성, 융릉과 건릉과 함께 찾아보면 좋은 역사의 현장이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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