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나쁘다.’

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것을 보는 사람도 기분이 나쁘다. 나쁜 기운은 전염이 빠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기분이 나쁠까? 기분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의 마음 상태를 뜻한다. 즉 우리의 마음에 어떤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고 그로 인해 감정이 상했다는 이야기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나를 뒤에서 갑자기 안았다 가정해 보자. 이 일을 당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평소에 안면이 있고, 친한 사람이면 충분한 신뢰관계가 있기에 갑자기 안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같이 웃어주며 반가워하면 그만이다. 혹은 깜짝 놀랐으니 다음부터는 그러니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안았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질문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당황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화가 날 것 같다"라고 한다.

우리가 기분 나쁜 상태가 되어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이용을 당했다면 기분이 나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보편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용당했을 때 기분이 나쁘다. 그 사람의 목적은 나를 안는 것이 되고 나는 그 사람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수원에서 평택으로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오랫동안 했다. 출근을 위해 탔던 기차 안에는 얼굴은 알지만 차마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인사를 하는 순간 매번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늘 같은 위치에 앉아 있었다. 특별한 점이라면 몸이 편치 않았다는 것이다.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있던 분이었지만 매일을 평택까지 홀로 다닐 정도면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상태였다. 하루는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기차는 평택에 도착하고 있는 상태였고 지나가던 승무원이 그분을 유심히 보더니 “평택에서 내리시죠? 도와드릴 테니 함께 내리시죠!”하며 친절을 베푼다. 기차가 평택역에 도착하는 찰나였기에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승객을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승무원은 힘을 주어 그분을 이끌었다. 조금의 저항은 있었지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분들이 행하는 일반적인 행동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그분은 평택역 플랫폼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분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고 있다. 그냥 출근을 하려다 궁금했던 나는 인사를 하고 출근하지 않고 왜 앉아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 말없이 기차표를 보여준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기차표는 ‘평택’이 아닌 ‘대구’가 적혀 있었다. 상황이 바로 파악이 되었다. 잘못 내린 것이다. 아니 내린 것이 아니라 ‘내림을 당한 것’이다. 승무원의 친절이 의도치 않게 피해로 바뀌었다.

사람이 기분 나쁜 순간은 ‘목적’이 되지 못하고 ‘수단’이 되었을 때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용을 당했을 때다. 누군가가 허락 없이 안는 행위로 다른 누군가는 수단이 되었다. 누군가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그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친절함을 위한 수단이 되게 한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행위가 인권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물어보는 행위만으로도 상당 부분 이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인간은 수단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존재여야 한다. 인간은 총체적 존재이기에 목적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늘 존엄한 상태를 원한다. 기분 나쁘지 않은 순간, 바로 ‘목적’이 되는 순간, 이 상태가 바로 인권적인 상태다.

이건일(태평2동복지회관 관장)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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