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 한글본 ‘정리의궤’(整理儀軌) 13책의 복제본을 국내 최초로 제작해 언론에 알린 것이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현륭원 의궤’ ‘원형을묘정리의궤’ ‘화성성역의궤’ 등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국내에는 없는 판본(板本)이다. 학계에서는 현존 한글의궤 중 가장 이른 연대의 의궤로 추정한다. 총 48책 중 13책만 현재 전해지고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채색본 1책,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이 12책을 보관 중이다.

특히 채색본 ‘정리의궤(성역도) 39’는 화성행궁도 등 수원화성 주요 시설물과 행사 관련 채색 그림 43장, 한글로 적은 축성(築城) 주요일지 12장 등 총 5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정리의궤(성역도) 39’에는 ‘화성성역의궤’에는 없는 봉수당도, 당낙당도, 복내당도, 유여택도, 낙남헌도, 동장대시열도 등이 수록돼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화성 축성과 관련된 그림이 섬세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으로 되어 있어 향후 올바른 수원화성 복원에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당시의 건축, 미술, 장황, 복식 등의 연구 및 왕실의 기록 문화, 한글 언어생활까지 알아볼 수 있는 역사적인 문헌이다.

이러한 소중한 국가적인 문화재가 머나먼 이국땅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이나 원본을 돌려받지 못하고 복제본을 만들어야 했다는 건 당시 문화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설움을 느끼게 한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정리의궤’를 전시했었는데 이후 프랑스가 의궤가 한국으로 반환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국의 첫 번째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 1835~1922)가 ‘정리의궤’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12책은 자신의 모교인 국립동양어대학에 기증했지만, 채색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경매로 팔았다가 경매상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구입했다. 정부 차원에서 제국주의적 약탈이나 불법 거래 등의 이유로 부당하게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환수 조치하는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글본 ‘정리의궤’ 13책은 2016년 7월 4일 경인일보와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해 그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그후 2년 3개월 동안 정조시대 연구와 수원화성 복원 기초자료로 ‘정리의궤’가 꼭 필요했던 수원시는 자료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13책의 복제본을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수원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국립동양어대학 관계자와 수십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세부 사항을 조율했으며, “해외 대여는 할 수 없다”는 프랑스 측의 입장에 따라 수원시 실무자와 전문가가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조사 및 사진 촬영 등을 진행했다. 또한 종이·서지·염료·역사 등 분야별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실측을 하고, 복제 작업을 했다. 수원시와 여러 관계자들이 한글본 ‘정리의궤’ 복제본을 만드는데 얼마나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을 것인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한글본 ‘정리의궤’ 복제본은 18일부터 12월 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 특별기획전 ‘수원의 궁궐, 화성행궁’에 전시된다. 시민들이 전시회에 가서 한글본 ‘정리의궤’의 가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동안의 수원시의 노력에 대해 진심으로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조백현 발행인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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