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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 편 - 정조 원행길의 흔적을 간직한 파장동 일원경기도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희태 기자 | 승인 2018.12.18 03:50

길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데, 때론 길을 인생에 비유하며, 나그네 길이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버킷리스트 중 한 곳인 ‘산타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도, 단순히 길을 걷는 것 이면에 길 위에서 인생을 찾고, 길에서 만나는 여러 풍경 속에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한 것일 것이다. 따라서 길은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길 위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어떤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효행공원에 세워진 정조의 동상. 정조가 걸었던 원행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공간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서울과 화성으로 이어지는 정조 원행길은 역사성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길이다. 이 길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가 묻힌 ‘현륭원(顯隆園, 융릉)’의 전배를 위해 행차하던 길로, 오늘의 수원과 화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매년 정조 능행차 행사가 열리며,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그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정조 원행길의 흔적 중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있는 파장동 일원에는 정조 원행길의 흔적이 제법 남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세워진 ‘지지대비’와 ‘노송지대’

현륭원을 전배하기 위해 수원으로 행차하던 정조는 지금의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있는 지지대 고개를 넘게 된다. 지금도 이 고개에는 지지대비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끄는데, 지지대의 유래를 알고 보면 이곳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이 지지대로 불리게 된 이유는 정조가 전배를 마치고 한양으로 되돌아갈 때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행차가 늦어진 데서 유래했다. 그야말로 효의 아이콘인 ‘정조’다운 모습으로, 때문에 더딜 지(遲)를 써서 지지대로 불리게 된다. 이후 1807년 화성 어사 신현에 의해 지지대비가 건립이 되어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지지대비의 전경
하마비와 계단에 새겨진 대(臺)와 지(遲)

한편 지지대비의 반대편으로 프랑스군 참전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서부터 효행공원, 지지대 교차로를 지나 파장사거리에 이르는 구간까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를 ‘노송지대’로 명명하고 있는데, 정조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을 담고 있다. 당시 정조는 왕실자금인 내탕금을 주어 식목관으로 하여금 소나무를 심게 했는데, 이때 심은 소나무가 500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100주 가량이 남아 있어, 노송지대의 보호를 위해 후계목을 심어 증식을 시도하는 등의 보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효행공원에 남아 있는 노송지대의 흔적
파장사거리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노송지대

지금이야 새로운 길이 생겼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노송지대가 있던 이 길이 수원과 한양으로 향하는 길이었기에 이러한 길 위에 여러 흔적들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노송지대를 가본 분들은 노송지대와 함께 선정비가 나열된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며, 지금은 수원박물관에 복제품으로 세워진 미륵당 마을의 장승 역시 세워져 있었다. 길 위의 형태는 변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정조가 원행길을 나섰을 당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가진 역사의 현장이다.

■ 옛 미륵현의 흔적을 간직한 법화당과 괴목정교

지금의 프랑스군 참전기념비에서 출발해, 효행공원을 지나 내려오다 보면 ‘괴목정교’라는 이름의 다리를 만나게 된다. 다리 한쪽에는 ‘괴목정교(槐木亭橋)’라고 새겨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 표석은 정조가 현륭원 전배 시 이동한 필로(蹕路) 상에 세워진 18개의 표석 중 하나로, 현재 진품은 수원박물관의 야외에 세워져 있고, 현장에는 복제품을 세워두고 있다. <수원군읍지>에 따르면 당시 수원과 화성에 걸쳐 18개의 표석과 11개의 장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곳이 바로 괴목정교인 셈이다. 정조가 현륭원을 전배하기 위해 이동한 원행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괴목정교. 정조가 현륭원을 전배할 때 지난 길이다.
괴목정교에서 세워진 표석. 진품은 수원박물관 야외에서 만날 수 있다.

괴목정교를 지나 100m 가량 이동하면 오래된 나무가 인상적인 ‘법화당(法華堂)’을 만나게 된다. 법화당은 한때 ‘미륵당(彌勒堂)’으로 불리던 건물로, 해당 지역은 과거 ‘미륵현’으로 불렸던 적이 있어, 지명의 영향을 미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이 왜 미륵당인지는 건물의 내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가운데 미륵불이 모셔져 있어 눈길을 끈다. 해당 미륵불은 회칠을 너무 많이 해서 자연적인 모습은 찾기 어렵지만, 미륵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에 갓을 쓴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웃는 모습과 함께 귀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삼국지> 속 유비의 신체적 특징이 ‘귀 큰 아이’였다는 점이 생각날 만큼 재미있는 미륵불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법화당. 미륵당으로 불렸던 곳으로, 옛 지명인 미륵현의 유래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법화당 내부에 자리한 미륵. 갓을 쓴 모습과 귀가 긴 것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수원과 의왕의 경계에 있는 파장동에는 정조의 원행길과 관련한 여러 장소들이 남아 있어 의미가 있는 현장이다. 또한 지금은 수원의 팔색길 중 효행길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걷기와 동시에 정조의 원행길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 곳으로, 주목해볼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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